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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100106] 용산참사 마지막 추모미사 강론 - 장동훈 신부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19.

2010년 1월 6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마지막 생명평화미사가 봉헌되었다. 폭설에 이어진 매서운 날씨였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100여명의 사제들이 남일당 건물 옆에 마련된 사제기도 천막에서 마지막 미사를 올렸다.



"죽은 자의 종소리를 산 자에게 전해줍시다"

용산 참사 마지막 추모 미사


장동훈 신부

인천교구 노동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2009년 1월 어느 날. 차가운 공기를 뚫고 죽은 이들의 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종소리는 눈처럼, 옹기종기 남루한 지붕 위에도 그리고 골목 어귀 걸인의 어깨에도 씨티파크처럼 높다란 아파트의 첨탑에도 올라앉았습니다. 종소리에서는 매캐한 탄내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낯선 냄새와 소리에 길을 가다가 입을 벌려 경악했고 이내 가슴을 쥐어짜며 슬퍼하거나 분노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렀습니다.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고 가슴을 쥐어짜던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가던 길을 무심하게 걸어갔습니다. 종소리가 사그라져 저 멀리 아련해질 때 죽은 이들의 종탑 아래로 살아있는 이들이 찾아왔습니다. 매캐하고 역한 냄새를 풍기던 종소리가 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소리라고 하나둘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은 이들이 살아있는 이들을 위해 종을 울린 것입니다. 


종소리는 작았지만 웅변적이었고, 둔탁하고 불편한 소리였지만 참 많은 이들을 울린 명료한 심금의 소리였습니다. 마지막 날 밤, 협박당하고 매 맞고 그리고 이내 망루에 올라 불타버린 이들은 그렇게 "처절하게" "절절하게" "절대정명"으로 살아있는 이들을 향해 종을 울렸습니다. 종소리는 우리 살아있는 이들의 터전이 얼마나 천박하고 형편없이 변해버렸는지, 돈에 눈이 벌게진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나라가 빠개지던 이웃의 삶이 파괴되던 무심히 길을 걷던 냉소와 무관심이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외면과 무관심이 이 끔찍한 현실을 낳은 죽음의 정부를 잉태했고 '오늘은 너 내일은 나'일 수 있다는 또 다른 용산의 두려움을 불러왔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알려주었습니다. 


죽은 이들의 종소리가 살아있는 이들의 삶을 걱정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함께하게 만들었습니다. 지키고 버텨내게 했고 함께 울고 웃는 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천박하고 형편없이 변해버린 살아있는 이들의 터전에 "감히",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이게 하는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절망과 희망, 슬픔과 기쁨, 죽음과 생명, 소멸과 탄생, 정 반대의 것들을 함께 품고 살아간 곳이 용산의 일 년입니다. 그래서 용산은 참 미안하고도 고마운 곳이고 슬프면서도 기쁜 곳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는 5000명을 너끈히 배불린 후 제자들을 배에 태워 호수 건너편으로 먼저 보냅니다. 그 사이 예수는 일일이 나눔의 기적을 체험했던 이들의 손을 만져주며 그들을 손수 떠나보냅니다. 그 애틋하고 절절한 예수의 작별 인사에서 전 용산이 걸어온 일 년 그리고 죽은 이들의 종소리가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감히 기적이라 일컬을 이 체험들을 가슴에 품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에게 하나하나 작별인사를 고하며 죽은 이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그 애틋하고 절절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우린 이곳에서 매 맞고 찢겨 상처투성이였지만 서로 안아주고 품어줄 "공감"의 위대함을 배웠고, 소박하고 평범한 밥상이지만 웃음과 "나눔"이라는 진수성찬을 맛보았으며, 세상이 알려주는 가치보다 더욱 소중한 불멸의 가치가 있음을 알았고, 희망은 스스로 희망이 되는 이들 안에 싹트고 자란다는 사실을 실감하였습니다. 


예수는 기적을 체험한 이들이 기적을 일상으로 만들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하나 눈을 맞추고 손을 맞잡고 떠나보냅니다. 진짜 기적은 일상이고 일상에서 자라야만 그 기적이 참 기적이 된다는 것을 말하면서 부탁 또 부탁합니다. 하지만 일상은 만만치가 않습니다. 호수에 다다라 맞바람에 당황하고 두려워 떨던 제자들처럼 우리의 일상은 흔들리고 요동칠 것입니다. 그때 다시 세상이라는 격랑이 덮쳐오고 폭풍우가 몰려올 때 우리는 죽은 이들의 종소리를 기억해야합니다. 용산의 기억과 용산의 다짐을 다시금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고 훌륭히 싸워 저 호수 건너편의 뭍에 우리 산자들이 울릴 희망과 기쁨의 종탑을 세울 것입니다.


그러니 견디고 싸워 이깁시다. 그리고 용산을 잊지 말고 가슴에 품읍시다. 종을 울리고 또 울립시다. 세상이 협박하고 윽박질러도 겁먹지 말고 노를 저어 죽은 이들의 종소리를 저 건너편 산자들의 뭍에 전해줍시다. 그러기에 용산의 일 년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막 시작된 것입니다. 그날, 누가 그들을 그렇게 사지로 내몰았는지 알길 없이 수사기록 3000쪽은 여전히 뻔뻔한 검찰의 벽장 속에 잠들어있고,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또 다른 용산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변두리로, 삶의 변두리로, 희망의 변두리로 내몰려 울고 있습니다. 아직도 용산은 현재진행형입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시작할 때입니다. 죽은 이들의 종탑아래가 아닌 우리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스스로 종소리가 되어 다시 종을 울려야합니다. 


죽은 이들이 기꺼이 종소리가 되어 우리에게 알려준 지금까지 애써 외면하고 천대했던 양심, 정의, 평화, 평등, 연대, 그리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희망, 가난한 예수는 귀하고도 소중한 것입니다. 아니 생명 같은 것입니다. 그 생명 같은 종소리를 울렸던 용산 남일당의 종탑은 그러니 더 이상 죽은 이들의 종탑이 아니고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산자들을 위한 종탑입니다. 죽은 이들이 이곳에서 기꺼이 종소리가 되어 다시 부활했고 생명을 나눠주고 함께 웃고 울다가 이제는 종탑 아래 모인 우리 산자들의 가슴 하나하나에 종소리로 다시 태어나려 합니다. 


종소리를 하나하나 불러봅니다. 고 이상림, 고 양회성, 고 한대성, 고 이성수, 고 윤용현.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종소리를 기억 또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