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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평강론과글

[2009년 1월] 경제위기 시대 한국교회의 과제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18.

경향잡지 2009년 1월호


[경향돋보기]

경제위기 시대 한국교회의 과제


신현주 율리아나 서강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독일 프랑크푸르크 대학에서 '그리스도교 사회윤리'를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신자유주의와 경제위기


신자유주의의 원칙은“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시장의 자율성” 이다. 

이는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사회의 부를 가져오며, 시장의 작용에 의해 부가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고전적 자유주의 논리(A.스미스, 「국부론」 , 1776년) 에 기초한다. 


이런 신자유주의 정책은 국가개입 축소, 복지 축소, 경쟁을 통한 생산성 증대를 특징으로 한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실행되었다. 이때 신자유주의의경쟁논리는 한국 사회 전반에 급속하게 스며들면서, 경제위기는 극복되는 듯이 보였고 국민들의 생활형편도 나아지는 듯했다. 그러나신자유주의 정책이 대대적으로 실행된 지 1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의 삶은 어떠한가?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명목으로 일자리가 불안해졌고, 물가가 오르면서 예전처럼 자신의 소득으로 적당한 삶을 누릴 수 없게 된대다수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은 커지고 있다. 이런 오늘날 한국 사회는‘신빈곤 사회’ 라고 지적된다. 과거의 빈곤은 물질적 결핍상황이 생활전반을 규정하는 절대적 빈곤이었다. 반면, 오늘날 빈곤은 경제활동에 참여하면서도 빈곤상황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신빈곤의 특징은 노동빈곤이다.

노동빈곤은 물질적 결핍만이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소외감을 갖게 하는 상대적 빈곤이다. 이는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의 결과이다. 곧 노동의 유연화 정책은 청년실업은 물론 비정규직, 40-50대 명예퇴직 등을 확산시키는 이른바 고용 불안정을 불러왔다. 또한 사회복지 혜택은 감소하고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는사람들이 증가한다. 사람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복지로부터 소외받으면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심화되고, 사람은 경력과 능력에 의해 평가받고 차별화된다. ‘노동력’ 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은 시장에서 경쟁적 가치를 높이려고, 조기유학을감행하고 기러기 아빠는 증가한다. 경쟁논리가 지배하면서 사회의안전망 역할을 하던 가정∙종교 공동체가 해체되고 사람들은 마음의고향을 잃고 시장의 논리에 방황한다. 사람들이 살아야 하는 유일한 목표는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경제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발전해야 하는가?”이런 물음에 교회는 원칙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다.


경제정의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가톨릭교회는 1891년 첫 사회회칙「새로운 사태」 를 공표하면서부터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르쳐왔다. 정책은 언제나 처해져 있는상황을 개선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기 때문에 사회의 변화와 무관할수 없다. 정책은 늘 현재의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선택한다. 그러나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정책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바는 다를 수 없다.


경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의 본성을 핵심에 둔다. 교회는 인간을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모상으로서존엄한 존재로 인식한다. 존엄한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인간 존재로부터 무조건적으로 인정받아야 하는 인간의 권리들이 요청된다. 인간 본성이 요청하는 권리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생존권이다. 인간은 생존을 위해 물질적 재화를 필요로 하는 결핍된 존재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결핍을 채워주는 역할을 바로 경제가 담당한다.


경제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자연 재화를 재배하고 이용하여 필요한 물품을 생산함으로써 인간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킨다. 따라서경제는 하느님께서 모든 재화에 부여하신 보편적 목적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경제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것을 관리한다는 인식을 갖도록 요청한다. 따라서 그들이 관리하는 자산을 통해 얻어진 부는 사회에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 사회에 이익을 돌린다는 말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데 궁핍함이 없도록 한다는 뜻이다.


정의로운 경제체제는 부 자체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 실현을 궁극 목적으로 해야 한다. 이런 근본적 목적을 망각한 경제 구조는 수단과 목적을 뒤바꿈으로써 인간을 소외시키는 죄의 구조이다( 「사회적 관심」 , 36항 참조) .


따라서 교회는 경제가 우선적으로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경제 질서가 목적하는 공동선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궁핍하지 않은 생활을 영위하고, 자율적인 노동을 통해 상호관계를 맺고그들의 재원과 능력의 힘을 증가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경제가공동선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께서 모든 재화에 부여하신 보편적 목적에 있다. 


경제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생산수단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고 하느님의 것을 관리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관리하는 자산을 통해 얻어진 부는 사회에 유익하게 쓰여야 한다.


경제정의에 대한  교회의 두 번째 가르침은
보조성의원리에 입각한다.
국가는 개인과 기업이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경제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오늘날 국가 경제가 밀접하게 결부된 세계경제 체제에서 공동선의 범위는 인류 공동체로확대된다. 세계경제는 세계사회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는, 이른바 남-북 갈등에 책임을 져야 한다. 인류의 반 이상을 궁핍한 생활에 몰아넣는 발전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퇴보이다.경제의 효율성은 인류 전체의 공동선과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경제정의에 대한 교회의 두 번째 가르침은 보조성의 원리에 입각한다. 국가는 개인과 기업이 창의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직접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경제활동을 지원해야 한다( 「백주년」 , 32항 참조) . 그렇다고 교회가 자유방임주의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조건 없는 경쟁은 특정 기업들이 이윤을 독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기적인방책을 제한할 수 없다. 그래서 교회는 시장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국가와 국제기구가 경쟁의 한계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백주년」 , 35항, 「팔십주년」 , 43-44항 참조) . 예를 들어 금융자본이 국경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발생시키는 문제, 곧 고리대금업과 같이 다른 국가에서 폭리를 취하는 문제를 방지할 수 있는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규제는 기업의 창의적 활동을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경제정의를 위한 세 번째 원리는 연대성에 의한 활동이다.대는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협력을 요청한다. 1986년 미국 주교단의 경제사목교서‘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정의(Economy Justice for all) ’ 는“사회 정의는 사회가 가난한 이들과 어떻게 관계하는가에 의해 가늠되어야 한다.” (16항) 며 정의의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연대성의 기준에 따라 우선적으로 세계경제는 가난한 국가들이 발전할수 있도록 국가간 협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경제가 더욱 발전한 국가들이 누리는 권력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발전에 필요한 기술과 자원을 나누도록 요청한다. 또한 기업 간 연대도 필요하다. 이것은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원칙들을 준수하고, 중소기업과 가난한 국가의 기업발전을 침해하지 않으며, 소비자와 환경에 대한 책임 있는 경영을 요청한다.


교회가 제시하는 경제정의를 위한 원리는 어떤 특정한 경제체제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한 경제 질서가 구축될 수있는 원칙적 기준이며, 구체적으로 다양한 경제체제의 모습으로 실현될 수 있다. 이런 원리들을 현실에 살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교회의 과제는 무엇인가?


한국 교회의 과제


자유주의의 문제점은 전 세계 신앙인들이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인식하는 것만으로 극복될 수 없다. 그것은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회구조의 문제는 개개인들의 윤리적 인식이나 결단을 통해 극복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이다.


교회는 사회정책을 확립하고 실행하는 정치기관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는 문제를 판단하고, 필요한 경우에 윤리적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 전체교회는 복음의 빛으로 사회구조의 도덕적 기준을가르친다. 이 가르침을 해당 지역의 구체적 상황에 맞게 실현시키는것은 지역교회의 몫이다. 지역교회의 주교들은“공동선과 교회의 선익을 …목적으로 소공의회나 지역회의나 총회 등을 구성” 할 수 있다「주교교령」 ( , 36항 참조) .


국가의 주교회의는 그들의 특정한 국가 안에서 발생하는 구체적 사회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결정할 수 있다. 오늘날 유럽과 미국의 주교회의는 사회문제에 대한 가르침을 결정할 때, 전 신앙인의 의견을 광범위하게 묻는‘상의과정(consultations process)’을 선호한다. 이 과정은 사회문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이 선험적으로 결정되지 않고, 철저하게 사안에 입각하여 이루어지기 위한 방법이다. 


이것은 교황 요한 23세( 「어머니요 스승」 ) 와 바오로 6세( 「팔십주년」 ) ,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사회적 관심」 ) 께서 강조한, “관찰-판단-실천” 의 세 단계를 이행하는 방법이다.


관찰단계에서 교회는 해당지역의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실을 그들의 체험을 통해 듣는다. 또 그 고통이 발생하는 원인을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분석한다. 


두 번째 판단단계에서 교회는 복음의 빛과 윤리적 관점 안에서 해당 문제를 도덕적으로판단하고, 그 극복방안을 모색한다. 이때 그 극복방안이 실행될 수있는 가능성과 그 결과도 예측해야 한다. 


또 그 방안을 실천할 때 어떤 사회기관이나 단체들과 연대할 수 있는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마지막 실천단계에서는 모색했던 방안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그 결과는 어떤 사람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시 관찰해야 한다. 


주교단이 이런 과정을 거치려면 많은 사람들의 협력이필요하다. 윤리학자들은 물론, 해당 문제의 전문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일상생활의 체험도 신앙인들에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실천하기 위해 다른 사회단체들과 연대할 필요도 있다.


이런 광범위한 상의과정을 거쳐 발표된 지역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이 있다. 1997년 독일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연대와 정의 안에 있는 미래(für eine Zukunft in Solidarität und Gerechtigkeit)’ 는 독일 전체 주교단과 개신교회가 협력하여 3년간 독일 전체 신앙인들과 ‘상의과정’ 을 거쳐 발표되었다. 1986년 미국 주교단이 발표한 경제 사목서‘모든 사람을 위한 경제정의’ 는 비록 상의과정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문서를 관찰-판단-실천 부분으로 나누어 작성했다. 이는 인간의 경제적 권리에 관한 미국 신앙인들의 다양한 견해를 파악하고,그 견해들을 제한하고 모을 수 있는 경제정의의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유익한 방법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광범위한 상의과정은 교회의 선험적 판단에서 벗어나 사회와 대화할 수 있는 물꼬를 틀 뿐만 아니라,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또한 신앙인들에게사회문제데 대한 의견을 묻는 방법은 가톨릭교회의 사회론을 이론적으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교육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신앙인들이 사회에 대한 신앙적 책임을 강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문제는 한국 사회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 안에서 그 문제가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논의는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국제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방안도모색된다. 교회는 이에 인간존엄성을 핵심에 둔 경제정의의 기준을제시함으로써 이바지할 수 있다. 또 가톨릭교회의 전 세계적 구조는 경제정의를 위한 연대의 좋은 조건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교회는 경제의 효율성과 도덕적 경제 질서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이해한다. 경제의 도덕성은 무엇보다도 부가 일부에 집중되지 않고 인류 전체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부는물질적 재화의 축적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자아를 발전시키고 능력껏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평가된다. 이런 진정한 의미의 발전이야말로 평화의 다른 이름이며( 「민족들의 발전」 , 76-77항 참조) , 경제질서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목표이다.


한국인들이 바라는 도덕적 경제질서와 세계경제의 정의를 일치시킬 수 있는 역할을 우리 한국 교회에 기대해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