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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와 문헌/교황과 주교

주교회의 2021년 노동절 담화문

by 편집장 슈렉요한 2021. 4. 15.

2021년 노동절 담화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마태 20,7)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마태 20,7)
예수님께서는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에서 특히 ‘밖’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에 주목하십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마태 20,7). 그들은 인격으로 존중받기는커녕 줄곧 “재화 생산을 위한 하나의 도구”(「노동하는 인간」, 7항)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생산성과 이윤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잉여 노동자’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들 가족의 생계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밭 주인은 무엇보다 ‘생명’을 우선으로 여깁니다. 무관심 속에서 배제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생명을 먼저 선택하고, ‘자신의 이윤’을 포기합니다. 그들은 도구도 잉여 노동자도 아닌, 존중받고 보호해야 할 하느님의 자녀이자, 우리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8.11. 푸시킨 미술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이자 어머니, 남편이자 아내, 아들이자 딸인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거리에서, 땅과 바다에서 목숨을 잃고 있습니다. 더 많이 더 빨리 일해야만 하는 운송 노동자, 고객의 폭언에도 결코 웃음과 친절을 잃어서는 안 되는 감정 노동자, 허술한 구조물 사이를 다녀야 하는 건설 노동자,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기계에서 일해야 하는 노동자, 알 수 없는 화학 약품에 노출된 노동자, 기술을 배우기보다는 허드렛일을 하도록 강요받는 청소년 노동자, 공장 또는 농촌과 어촌에서 차별받는 이주 노동자, 그리고 원청(原請)의 위험을 대리하는 하청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그들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의 ‘생명’은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일상화되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경제 사회 생활의 주체이며 중심이고 목적”(사목 헌장 63항)이라는 하느님의 진리와는 달리 자본이 노동과 노동자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지만, 불안과 불편 속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캄캄한 밤, 흐릿한 손전등에 의지한 채 낡은 야외 화장실로 향하는 이주여성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집은 ‘비닐하우스’입니다. 더럽고 어두운 움막, 더위와 추위 그리고 화재에 취약한 구조물, 꽁꽁 언 수도와 번번이 끊기는 전기, 그럼에도 적지 않은 1인당 집세는 임금에서 꼬박꼬박 공제됩니다. ‘근로 기준법’ 제63조에 따라 법정 근로 시간과 휴게 시간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 10시간 이상의 긴 노동을 하면서도, 제대로 된 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예 노동’(「새로운 사태」, 14항 참조)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고된 노동 뒤에 편안하고 안전한 휴식이 절실한 그들은 허술한 잠금장치에라도 자신의 안전을 맡겨 보지만 불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 그리고 노동자로서 동등한 권리(『간추린 사회 교리』, 298항 참조)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윤과 먹거리를 제공하는 ‘보이지 않는 부속품’으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일을 마친 ‘노동자들’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족과 함께 따뜻한 밥을 먹으며 기뻐합니다. 여기에는 포도밭 주인의 선의가 큰 역할을 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노동자들의 존엄성(『간추린 사회 교리』, 144항 참조)을 인정하고 보호하면서 자신의 이윤을 포기하는 희생적 사랑을 실천하여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생명과 기쁨을 줍니다. 포도밭 주인의 이러한 선의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고용주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연대”를(『간추린 사회 교리』, 193항 참조) 통하여 공동선을 실현하고, 이윤과 효율성보다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안전과 생명을 우선시하는 세상을 만드는 동력이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의 경제 사회 체제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만들지 않고 한 사람도 저버리지 않을 때에만, 우리는 보편적 형제애의 축제를 경축할 수 있습니다”(「모든 형제들」, 110항).

노동자와 가정의 보호자이신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2021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