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10] 박영대 소장의 인권과 인간 노동(제2기 사회교리 9강 )

2010년 6월 10일

대전교구 2기 사회교리학교 제9강

인권과 인간 노동

박영대_우리신학연구소 소장

1. 인권 이야기

“인간 하나하나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녔으므로 존엄한 인격을 지니고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108항). 교회가 인권, 인간 존엄성을 이야기할 때 근거로 삼는 것은 하느님이 사람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했다는 점이다. ‘모습’으로 번역된 히브리 ‘첼렘’은 상(像)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과거 왕들은 땅을 점령하면 그곳에 자기 모습을 본 딴 상을 만들어 세워 두고 피지배자들이 오가면서 경배하도록 했다고 한다. 상은 ‘이곳은 내 땅이다.’라는 뜻이다. 하느님께서 당신 모습을 본 따 이 세상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은 이 세상이 바로 당신 땅이라는 표지이다. 우리가 하느님 모습대로 살아가야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여기가 하느님의 땅이구나!’ 알아볼 수 있다.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의 상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 세상이 하느님의 땅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할 소명이 있다. 하느님 모습대로 산다는 것은 새 계명에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산다는 것이다(요한 13,14-15).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생각해보자. 강도를 만난 사람 곁으로 사제와 레위인이 지나갔지만, 그 사람을 지극 정성으로 돌본 이는 유다 사람에게 사람 취급도 못 받던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이 비유에서 우리 신앙인을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가? 사제?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 여관 주인? 우리가 맡아야 할 몫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돕는 사마리아 사람의 역할이 아니라 강도를 만난 사람의 역할이다. 예수는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과 함께 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 최후의 심판 비유에서 하느님은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 가장 작은이라고 했다. 한국천주교회와 신자는 점점 부자가 되고 있다. 2005년 인구센서스 결과 부자가 사는 곳일수록 천주교 신자비율이 높고, 천주교 신자가 교육도 가장 많이 받고 화이트칼라직업군 비율도 높았다. 이제 ‘가난한 사람에 대한 우선 선택’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최근 2010년 봄 정기총회 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4대강 사업 반대 성명을 발표하자 ‘뜻있는 천주교 평신도 모임’은 조선일보 광고 “성당에 가서 미사 드리기가 무섭다”를 통해 반대 뜻을 발표한 일이나, 명동성당에서 수구 성향의 사목회 임원들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한 천주교 연대 소속 사제들의 기도회를 드러내놓고 모욕하고 방해한 일은 앞으로는 자주 일어날 일이다.

<간추린 사회교리> 제3장 Ⅳ. 인권의 내용을 따라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인권은 보편적이고 침해할 수 없고 양도할 수 없다. 인권은 보편적이다. 인권은 시대나 장소나 그 주체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침해할 수 없다. 그 권리들은 인간과 인간 존엄에 내재되어 있고 모든 사람이 모든 장소에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그 권리들을 존중하여야 하는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 권리들을 선포하는 것은 헛된 일이기 때문이다. 인권은 양도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이 권리들을 정당하게 빼앗을 수 없다. 그러한 행위는 인간 본성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153항).

난징대학살 때의 어린아이 시체들 

인권 의식도 중요하지만 인권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이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더 보태면 가슴에서 손발로의 여행도 아주 긴 여행이다. 아는 것을 느끼고 실천에 옮기는 게 그만큼 어렵다. 인권 감수성이 발달하면 인권이 침해당하는 상황에 부딪히면 불편해지고 바로 느낄 수 있다.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바로 시작한다. 

인권 감수성을 기르려면 어려서부터 어려서부터 인권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인권 교육도 필요하다. 어린이 인권교육을 위한 책으로는 <뚝딱뚝딱 인권짓기>, <정의의 사도가 왔다>, <너희가 책임을 아느뇨> 등이 있다. 

다른 사람을 자기와 같은 사람을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교도소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그 옛날 평화시장에서 왜 사람을 번호로 불렀겠는가? 일본군이 한국 여성들을 어떻게 그렇게 짓밟을 수 있었겠는가? 난징대학살은? 용산 참사도 철거민을 사람이 아니라 철거민으로 보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은 집단으로 보면서 타자화하기 때문이다. 혹시 여러분 마음에 쟤는 사람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가? 아니면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없는가? 

용산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 5월 31일, 항소심 재판부는 철거민 9명에게 유죄 판결을 했다. 그 중 한 명은 고 이상림의 아들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이다. 아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판결한 것이다. 남편은 잃고 막내아들은 감옥에 보낸 전재숙 님의 마음은 어떨지? 단장(斷腸)의 아픔,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는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는 편견이 있다. 하지만 장애인은 특정 부분이 우리와 다를 뿐 우리와 똑같다. 장애인도 어디든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는 이동권이 없거나 제한되어 있다. 지하철역 리프트는 장애인에게는 수치스러울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2002년 5월 19일 발산역에서는 1급 중증장애인 윤재봉(남. 63)씨가 지하철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성당에도 아직까지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 인천교구 용현동본당에는 성전 맨 앞좌석이 장애인 자리이다. 고해소도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드나들 수 있도록 고쳤다. 더 나아가 성체조배실도 장애인 교우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고쳐야 하지 않을까? 성당에 장애인 편의시설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기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장애인도 우리처럼 성욕이 있다. 최근 노인의 성을 다룬 <죽어도 좋아>의 감독 조경덕은 장애인의 성을 다룬 영화 <섹스 볼란티어>를 만들었다(곰TV에서 무료 상영되고 있다). 성소수자도 성 지향을 빼고는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동성애자라고 해서 모든 동성을 좋아하는 게 아니다. 성소수자 안에도 빈부격차가 있고, 진보와 보수가 있다.

[섹스 볼란티어, 15세 이상 관람가 2009년 ‧ 드라마/월드시네마 ‧ 2시간 3분] 불법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세사람. 여대생 ‘예리’, 중증뇌성마비 장애 남성 ‘천길’, 그리고 천주교 신부. 경찰 수사과정에서 그들은 성매매가 아닌 자원봉사였다고 주장한다. 사지가 부자유하여 혼자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천길. 그는 평생 거의 집 밖에도 나와본 적 없지만 독학으로 방송통신대에 입학하고 시인으로 등단까지 하였다. 그러덩 중, 장애의 악화로 죽음을 앞두게 된 천길은 신부에게 고해성사한다. 죽기 전에 따뜻한 사람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다고. 종교와 현실적 문제 사이에서 고뇌하던 신부에게 예리가 찾아오는데... [개봉일: 2010년 4월 22일 (대한민국) 감독: 조경덕 음악: 김명종 각본: 조경덕 촬영: 강국현, 여철수, 하경호]

그 권리 중에는 생명이 잉태된 후부터 모체 안에서 발육할 수 있는 권리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생명에 대한 권리, 일치된 가정에서 그리고 인격의 발전에 적합한 장소에서 살 권리, 진리 추구와 인식을 통하여 자신의 지성과 자유를 발전시킬 권리, 그 외에 지상의 물질 재화를 올바르게 취득하여 자신과 식구들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동할 권리, 끝으로 자유롭게 가정을 이루고 책임 있는 성생활을 함으로써 자녀를 낳고 기를 권리가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러한 권리들의 원천이며 종합적 이해는, 자기 신앙의 진리 안에서 살, 그리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초월적 존엄성에 따라 살 권리로 이해되는 종교적 자유이다(155항).

 

인권 목록의 첫 번째는 임신된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지닌 생명권이다. 낙태와 안락사 반대 등 생명운동은 한국천주교회가 오랫동안 힘 기울여온 사회운동이다. <생명 수호 활동을 위한 사목 계획>을 보면 미국 천주교회는 생명 수호 활동을 하면서 ‘일관성 있는 생명의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낙태와 안락사 안에 있는 의도적인 살인의 악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인권을 위협하는 다른 수많은 긴급한 조건들을 외면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낙태와 안락사를 반대한다는 사실이 “빈곤, 폭력 그리고 불의로부터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무관심한 것을 용서해주지는 않습니다. 인간 생명에 관한 어떠한 정책들도 전쟁의 폭력성과 사형제도라는 부끄러운 제도에 저항하기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인간 존엄성의 모든 정책들은 인종차별주의, 빈곤, 굶주림, 실업, 교육, 주거와 건강관리 등의 문제들에 관한 것도 심각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생명의 복음을 살기 Living the Gospel of Life 23항).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2007년 봄 정기총회를 마치면서 성명서 “사랑의 문화를 향하여”(2007.3.15)를 발표하였다. 이는 주교회의 산하 위원회가 아닌 주교단 공동 성명서가 발표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고, 최근 정부 정책에 대한 입장 발표인데도 연합통신을 제외한 주요 언론에서는 이 사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왜 이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아마도 새롭고 별난 내용을 더 좋아하는 한국 언론 특성상 비록 주교회의 이름의 성명서라도 이미 한국 천주교회가 꾸준히 얘기해온 것이기에 뉴스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생명 이야기는 결코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중 여론의 가늠자라 할 수 있는 언론이 한국 천주교회의 생명 이야기에 시큰둥한 점은 생명 수호 활동 전반에 걸친 자기 성찰을 요구한다 할 수 있다.

‘일관성 있는 생명의 원리’는 사람 중심이다. 최근 생태 위기는 생명권을 위협하는 지경이다. 따라서 생명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반드시 생태 문제를 언급해야 한다. 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수호하는 ‘일관성 있는 온 생명의 원리’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인권에 대한 장엄한 선포는 인권이 침해받는 가슴 아픈 현실과 모순되는 것이다. 곧 전쟁과 각종 폭력을 비롯한 집단 학살과 집단 추방, 그리고 인신매매, 소년병, 노동착취, 불법마약거래, 매매춘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예화가 전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주의가 성행하는 나라들에게서도 그러한 권리들이 언제나 완전하게 존중되는 것은 아니다(158항).

[어둠의 아이들. 청소년 관람불가 2008년 ‧ 스릴러/월드시네마 ‧ 2시간 18분] 아동인권유린의 참혹한 현실 이토록 충격적인 진실을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은 지금까지 없었다! 태국 주재 신문기자 난부 히로유키(에구치 요스케)는 일본의 아이가 머지 않아 태국에서 불법장기이식수술을 받는다는 것을 동경본사로부터 접하고 취재를 시작한다. 취재를 시작한 난부는 수술에 공급되는 심장이 살아있는 아이의 것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높은 이상을 가지고 방콩의 사회복지센터에 일하기 위해 찾아온 오토와 케이코(미야자키 아오이) 역시 불법장기매매뿐만 아니라 소아성학대, 아동인신매매 등 태국 아이들이 처한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자신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에 고민한다. [개봉일: 2008년 감독: 사카모토 준지 원작: 양석일 음악: 이와시로 타로 촬영: 카사마츠 노리미치]

영화 <어둠의 아이들>은 소아성학대, 인신매매, 불법장기매매의 참혹한 현실을 다룬다. 태국의 시골 아이들이 팔려와 감금상태에서 매매춘을 하다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일본 아이에게 장기를 내주고 죽어간다. 

2. 인간 노동 이야기

노동은 인간의 본래 상태에 속하는 것이며, 인간이 타락하기 전부터 있었으므로 형벌이나 저주가 아니다. 노동은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일치의 관계를 깬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고생스럽고 힘든 것이 된다(창세 3,6-8) (256항).

뱀은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된다고 유혹한다. 독선과 독점의 유혹이다. 예수는 광야의 유혹에서 이를 넘어섰고 나눔과 섬김의 하느님나라운동을 펼쳤다.

안식일을 기념하고 지키는 것은 자의로든 강제로든 일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고,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모든 종류의 착취에서 인간을 막아주는 방패이다(258항).

이스라엘 해방공동체는 안식일뿐만 아니라 안식년과 희년제도를 두었다. 이는 “일부 사람의 재산 축적이 때로는 다른 이들의 재산 결핍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심오한 직관에 따른 것이다”(258항).

그분(예수)께서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시어 지상생활의 대부분을 목수의 작업대에서 육체노동을 하면서 보내시고 요셉의 작업실에서 일하시며(마태 13,55; 마르 6,3 참조) 요셉에게 순종하셨다(루카 2,51 참조). (259항)

노동의 기쁨을 알려면 손으로 하는 노동을 직접 해보는 게 바람직하다. 일부러라도 직접 만들어서 쓸 수 있는 것은 만들어서 쓰는 게 필요하다. 되도록 적은 연장을 가지고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면 좋다. 그래야 감각과 야성이 살아나고 우리는 온전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일을 해야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노숙인 가운데 안전화를 신고 있는 사람은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다. 노숙인이 무너지는 데는 단계가 있는데, 일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급격하게 망가진다고 한다.

노동은 자본보다 본질적으로 우위에 있다. 이 원칙은 생산과정에 직접 관련되는 것이다. 생산과정에서 노동은 항상 주요 동인이 되지만, 생산수단의 총합인 자본은 다만 하나의 도구 또는 도구인이 될 뿐이다. …… 노동과 자본 사이에는 상호 보완 관계가 존재하여야 한다. 생산과정에 내재된 논리 자체를 보면, 노동과 자본은 서로 얽혀 있어야 하는 것으로 자본과 노동 사이의 대립을 극복할 경제체제를 시급히 만들어야 함을 알 수 있다(277항).

신자유주의 경제는 철저히 자본, 금융자본 우위의 경제이다. 지역화폐운동(한밭레츠), 공정무역, 우리농촌살리기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대안 경제활동이 필요하다.

주일은 자선 활동을 하고 가족과 친지들, 병자와 노약자들에게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거룩한 날이 되어야 한다. …… 더구나, 주일은 성찰과 침묵, 학습과 묵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생활의 내적 성장을 도모하기 적절한 시간이다(285항).

쉬는 날은 노는 날이 아니라, 일상에서 벗어나 리듬을 만들어내는 날이라야 한다. 마디가 있어야 리듬이 있다. 마디의 내용은 리듬의 내용을 만들어낸다.

노동은 인간의 천부적인 권리며 소명이기도 한 가정생활을 이루는 기본이다. 노동은 생계의 수단이 되며, 자녀 양육을 보장한다(294항). 

노동의 보수는 각자의 임무와 생산성은 물론 노동 조건과 공동선을 고려하여 본인과 그 가족의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302항).

도시본당에서는 봉사자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맞벌이가 늘어나고 있다. 생계형 맞벌이도 있지만 자녀 사교육비를 대기 위한 맞벌이도 많다. 우리 사회는 ‘평등(坪等) 사회’라고 한다. 모였다 하면 사는 집 평수, 자식들 공부 등수를 묻기 때문이란다. 

용납할 수 없는 형태의 어린이 노동은 다른 폭력에 비해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지만 어느 것 못지않게 심각한 일종의 폭력이다(296항).

세계인의 식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것은 태국산 새우들이다. 세계 1위 새우 수출국인 태국에서 생산되는 새우의 상당부분은 양식새우다. 새우 양식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얀마 사람들로 70%가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일하고 있다. 미얀마의 임금수준은 태국의 1/7수준이다. 이렇다보니 미얀마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국경을 넘고 있다. 그 중에는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들도 있다. 보통하루 15시간씩 새우 까는 일을 한다. 때로는 공장주의 구타에 시달린다. 새우 양식장 역시 문제다. 새우 양식 과정 중 양식장에 다량의 항생제와 화학비료를 뿌리게 되는데 이 때문에 5년이 지나면 땅이 썩어 양식장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새우 양식장으로 파괴된 땅이 현재까지 제주도 1350개만큼의 넓이에 해당한다. 가장 심각한 것은 동남아시아 해안 생태계의 아주 중요한 식물군인 맹그로브가 파괴되고 있다는 것이다. 열대 기후에 서식하는 어종 중 75%는 일생의 어느 한 부분을 맹그로브에서 보내게 된다. 새우양식장으로 파괴된 맹그로브는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으로 여겨지는 고용노동에서 다양한 유형의 노동활동의 특성을 지닌 일련의 직업들로, 곧, 단일하고 최종적이며 공인된 개념의 노동세계에서, 지극히 다양하고 유동적이며 가능성이 풍부한 여러 직업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고용불안 증대, 구조적 실업의 지속, 현재의 미진한 사회보장제도와 관련된 여러 가지 우려되는 문제들도 있다. 경쟁과 기술혁신에 대한 요구와 복잡한 금융의 흐름은 노동자들과 그들의 권리옹호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314항).

이제 하나의 직업, 하나의 직장으로 평생을 살 수 없다. 지금의 공교육은 첫 직업을 위한 준비이다. 두 번째부터는 각자의 몫이다. 대학입시교육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

경제와 금융의 매우 급격한 세계화 과정으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노동조합이 쇄신을 꾀하도록 촉구한다. 오늘날, 노동조합은 새로운 방식의 활동이 요구되고 있다. 연대활동의 범위를 확장함으로써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 노동자들, 국제적 차원에서도 점점 더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기업합병으로 일자리에 위협을 받는 이들, 일자리가 없는 이들, 이민들, 계절노동자들, 시대에 발맞춘 직업교육을 받지 못해 노동시장에서 쫓겨나 적절한 재교육 없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이들까지 보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308항).

지금의 노동운동은 대기업 중심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면으로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노동운동이 자기 이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발언하고 실천할 때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될 것이다.

교회의 사회교리는 파업이 적정한 이익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어쩌면 필수적인 수단으로 나타날 때, 분쟁해결을 위한 다른 모든 방법이 아무 효과가 없을 때에는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한다(304항).

<가톨릭사회교리-주제편>은 “노동조합이 이룬 가장 힘든 승리 가운데 하나인‘(<간추린 사회교리 304항) 파업을 거의 해서는 안 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재 기업주들은 무노동 무임금을 적용해서 파업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손해배상 청구를 통해 노동조합 지도부를 압박한다.

교도권은 다양한 직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를 옹호하고자 결사나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와 관련하여 존재하는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역할을 인정한다(305항). 

가톨릭 사업체의 노사 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사용자인 수도자와 사제의 노동조합관이다. 노동조합이 설립된 교구는 현재 한 곳도 없다. 맨 처음 만들어졌던 광주교구도 압력 때문에 자진 해산했다.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종국에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교회 사업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보면서 복음대로 살지 않고 맘몬의 가치대로 사니까 결국 사고방식도 맘몬의 것처럼 된다는 느낌이다. 복음과 가톨릭 사회적 가르침에 바탕을 둔 기업 경영 원리를 협약 방식으로 정리해서 가톨릭교회 사업체나 가톨릭 경영인 운영 사업체가 가입하는 운동을 펼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