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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교리학교/사회교리 강의

[20100617] 한상봉 국장의 국제공동체와 평화(제2기 사회교리 10강)

by 편집장 슈렉요한 2016. 12. 20.

2010년 6월 17일

대전교구 2기 사회교리학교 제10


평화 증진

한상봉(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1. 평화는 우리 신앙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평화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하느님의 속성입니다. “주님은 평화이시다”(판관 6,24). 하느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모든 피조물은 각각 훌륭하고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평화는 모든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흠 없는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습니다. 평화와 폭력은 공존할 수 없으며, 폭력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수 없습니다. 


성경의 계시에서,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를 넘어서서, 생명의 충만함을 나타냅니다. 평화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가장 큰 하나의 선물이며, 하느님의 계획에 순종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평화는 사회생활의 목표입니다. 천지 만물을 끌어안는 평화의 새 세상은 메시아 시대에 대한 약속이며, 메시아는 “평화의 군왕”(이사 9,5)입니다. 그분의 평화가 다스리는 곳이면 그 누구도 더 이상 하느님 백성을 두렵게 하지 못할 것이며, 평화가 지속될 것입니다. 임금이 하느님의 정의에 따라 다스릴 때에 의로움이 꽃피고 평화가 넘쳐납니다. 


평화에 대한 약속은 구약 성경 전체에 나타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가장 먼저 아버지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명도 평화의 선포로 시작됩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말하여라”(루카 10,5; 로마 1,7). 

그러므로 평화는 자기 형제자매들과 화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가 하느님께 청하는 용서는 우리가 형제자매들에게 베푸는 용서와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용서를 청하고 용서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평화의 사도가 될 수 있으며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는 일입니다. “평화의 복음”(에페 6,15)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신비가 깃들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당신의 고난과 십자가로 분열을 극복하시고 평화와 화해를 회복하심으로써 “적개심을 없애시고”(에페 2,16) 인류에게 부활의 구원을 가져다 주셨습니다. 


2. 평화를 가져오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요?


평화는 하느님 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회의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질서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며, 적대 세력 사이에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평화는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를 확립하는 것입니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며, 넓은 의미에서는 인간이 모든 차원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권을 수호하고 증진하는 것은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개인과 민족과 국가의 완전한 발전을 이루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는 또한 사랑의 열매입니다. 정의는 평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없애지만, 평화 그 자체는 사랑의 행위이며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따라 살아감으로써 날마다 조금씩 이룩되는 것이고, 모든 사람이 평화 증진에 대한 책임을 깨달을 때에만 꽃필 수 있다. 이럴 때 평화는 가정과 사회의 다양한 집단들로 확산되고 결국 정치 공동체 전체의 참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화합과 정의를 존중하는 분위기에서 참된 평화의 문화가 자라나고 국제 공동체 전체에 널리 퍼질 수 있습니다. 

한편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든 악의 문제를 해결하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닙니다. 폭력은 인간에게 걸맞지 않으며 인간의 존엄과 생명, 자유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비폭력적인 저항의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은 복음적 사랑을 증언하는 이들입니다.


3. 전쟁에 대한 대비책은 무엇인가요? 


교도권은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며, 전쟁에 대해 달리 생각할 것을 요구합니다. 사실상 원자핵 시대에 전쟁을 정의의 도구로 이용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위태로운 것입니다. 전쟁은 ‘재앙’이고,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길이 아닙니다. 전쟁은 새롭고 더욱 복잡한 분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평화로는 잃을 게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으로는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무력 전쟁은 물질적인 것뿐 아니라 도덕적인 것도 파괴합니다. 결국, 전쟁은 ‘진정한 인도주의의 실패’이며, 언제나 인류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것입니다.


“결코 다시는 일부 민족들이 다른 민족들과 대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더 이상, 더 이상 전쟁은 없어야 한다.”(바오로 6세, 국제연합총회에서 한 연설, 1965.10.4. 5항)

 

오늘날 국제적 분쟁을 해결하려면 전쟁이 아닌 다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작은 나라들도 두려운 무기와 파괴 수단을 지닐 수 있으며, 전 세계 국민들 사이에 맺는 관계가 미묘하기 때문에 어떤 분쟁이 가져올 결과를 미리 통제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예측할 수도 없습니다. 

전쟁은 특히 불의와 빈곤, 착취와 같은 구조적 상황과 관련되어 있어서 전쟁의 상황을 없애려면 전쟁의 밑바닥에 깔린 원인들을 파헤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평화의 다른 이름은 발전이다. 전쟁을 방지하는 것이 모든 이의 책임이듯이,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도 모든 이의 책임이다.”(백주년, 52항) 


4. 방어전쟁은 정당한 것인가요? 


침략 전쟁은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입니다.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는 비극적인 경우에, 침략을 받은 국가 지도자는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방어를 할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력 사용은 신중해야 정당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공격자가 국가나 국제 공동체에 가한 피해가 계속적이고 심각하며 확실해야 한다. 이를 막을 다른 모든 방법들이 실행 불가능하거나 효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야 한다. 성공의 조건들이 수립되어야 한다. 제거되어야 할 악보다 더 큰 악과 폐해가 무력 사용으로 초래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상황 판단에서 현대 무기의 파괴력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 조건들이 이른바 ‘정당한 전쟁’에 대한 교리에서 열거되는 전통적인 요소들이다. 이 같은 도덕적 정당성의 조건들에 대한 평가는 공동선의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의 신중한 판단에 달렸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309항) 


이 때 국가들은 자국뿐만 아니라 전쟁을 막고 세계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데 협력할 의무가 있습니다.  


“국민을 정당하게 보호하려는 군사행동과 타국을 정복하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또한 전쟁 능력이 그 힘의 모든 군사적 정치적 사용을 정당화시키지 않는다.”(사목헌장, 79항) 


국제연합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래 세대들이 비극적 전쟁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려고 생겨났습니다. 국제연합 헌장은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고자 무력에 의존하는 것을 전반적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정당방위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안전보장이사회가 결정을 내렸을 때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격이 임박하다는 명확한 증거 없이 방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은 도덕적 법률적으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5. 군복무의 근본적 목적은 무엇인가요?


정당방위를 위해서 국가가 군대를 갖는 것은 정당합니다. 군사 행위는 평화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군에서 복무하는 모든 사람은 전 세계의 선과 진리, 정의를 수호하도록 부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국제 연합이 추진하는 인도주의적인 평화 유지 사명을 위해 다국적군에 복무하는 군인들의 수가 점차 늘고 있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모든 군인은 도덕적으로 국제법과 이 법의 보편적 원리에 위배되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의무가 있습니다. 군인들은 개인과 민족의 권리나 국제 인도주의 법규범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 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한 행위는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한 것이라 해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군 복무가 의무인 경우에도 양심에 따라 모든 종류의 무력 사용을 거부하거나 특정한 전쟁에 참가하는 것에 반대하여 원칙적으로 군 복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대안적 형태의 복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사목헌장, 79항) 


6. 무고한 생명을 보호할 의무는 무엇인가요? 


방어전쟁의 경우라 해도, 박애의 원칙에 따라서 전쟁에서 민간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수한 범주의 전쟁 희생자는 난민들입니다. 이들은 전쟁 때문에 자기들이 살던 곳에서 도망쳐 외국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으며, 교회는 이들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그들의 인간 존엄을 수호하려는 노력 하면서 그들과 가까이 있습니다. 한편 민족, 인종, 종교 또는 언어 집단 전체를 말살하려는 시도는 하느님과 인류 전체에 대한 범죄이며, 그런 범죄의 책임자들은 정의 앞에서 그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20세기는 갖가지 대학살의 비극적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국제 공동체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거나 인간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받는 집단들을 위해 개입할 도덕적 의무가 있습니다. 국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국은 이런 상황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며,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이 없을 때는 침략자를 무장 해제시킬 정당한 의무가 있습니다. 이때 채택된 조치는 국제법과 국가 간의 기본적인 동등 원칙을 존중하며 실행되어야 합니다. 교도권은 국제공동체 안에서 대학살, 침략 행위, 전쟁 범죄와 같은 중대한 범죄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국제 형사 법원의 활동을 거듭 권장합니다.   


7. 군비 축소는 왜 필요한가요?

 

교회의 사회교리는 군비가 균형 있고 절도 있게 전반적으로 축소될 것을 제시합니다. 엄청난 양의 무기 증가는 안전과 평화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각국이 정당방위에 필요한 수단만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필요 충족의 원칙은 무기 구매국들뿐만 아니라 무기 생산국들과 판매국들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군비 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 보다는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 생화학 무기나 핵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 무기는 특히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핵무기 확산 방지 원칙과 핵 군축, 핵 실험 금지 조치는 국제적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통제하여 신속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전쟁의 빈번한 발생을 조장하는 소형 무기와 경무기, 중무기들의 생산과 판매, 수입과 수출을 역시 통제되어야 합니다. 이 무기들은 대부분 내란과 지역 분쟁에서 살상용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는 그런 무기들의 생산과 비축, 판매와 거래를 통제하는 적절한 법안을 채택하여, 정규 군대에 소속되지 않은 비정규 전투원 집단 사이에 그런 무기들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반드시 또 시급히 막아야 합니다.


8. 테러리즘은 어떻게 몰아내야 하나요? 


테러리즘은 오늘날 국제 공동체에 깊은 충격을 주는 가장 잔인한 형태의 폭력 가운데 하나입니다. 테러리즘은 증오와 죽음의 씨앗을 뿌리고 복수와 보복을 부릅니다. 재산의 파괴나 살인을 목표로 하는 일부 극단주의 조직들의 전형적인 파괴 전략인 테러리즘은 이제 정치적 공모의 검은 고리가 되었습니다.

테러리즘은 국제 인도주의 법과 같이 전쟁을 제한하는 모든 법규들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런 용납할 수 없는 형태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행위의 원인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테러리즘 대한 싸움은 테러리즘이 발생하거나 발전하지 못하게 할 조건들을 만들어 줄 도덕적 의무를 요청합니다. 

테러리즘은 인간의 생명을 철저하게 무시하므로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으며, 단호히 단죄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테러리즘에서 자신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테러와의 싸움은 인권과 법치 국가의 원리를 존중하며 실시되어야 합니다. 범죄의 책임은 언제나 개인에게 있으므로, 테러범들이 속해 있는 종교나 국가 또는 인종 집단으로 그 책임을 확대해서는 안 됩니다. 

테러리즘을 몰아내기 위한 국제적 협력이 단순히 억압과 징벌을 위한 군사 행동으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무력 사용이 필요한 경우라도 테러 공격의 이면에 숨어 있는 이유를 용기 있고 명확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테러리즘을 더욱 부추길 수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정치적, 교육적 차원에서 국제사회의 특별한 노력이 요구됩니다. 

또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테러범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모독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진리에 속한 자가 아니라, 자신이 하느님의 진리를 전부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종교도 테러리즘을 용인하지 않으며, 그것을 전파하는 일은 더더욱 없습니다. 


9. 평화를 위해 교회는 어떻게 기여하나요? 


세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사이며,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한 평화의 표지이며 도구”입니다. 평화를 증진시키는 일은 하느님께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신다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로지 이런 믿음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이루고 타종교 신자들과 결실 있는 협력을 추구합니다. 종교의 차이가 분쟁의 원인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신자가 모두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민족들 간에 일치를 가져다주는 중요한 원천입니다.


교회는, 진정한 평화는 오직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전쟁과 분쟁의 참혹한 결과를 마주할 때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폭력으로 인한 고통은 전쟁 당사자 모두의 진실하며 용기 있는 반성과 참회를 통해서만 없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가 정의에 대한 요구를 묵살해서는 안 되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막아서도 안 됩니다. 정의와 진실은 화해에 필요한 실질적 조건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기도를 통해 평화를 위한 투쟁에 참여합니다. 특히 “그리스도교 생활의 원천이며 정점”인 성찬례는 평화를 위해 그리스도인이 참되게 투신하도록 하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세계 평화의 날’은 평화와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 투신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는 날입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일반적으로 새해 첫날인” 이날에 “평화에 대한 생각과 결심”을 하라고 말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요구와 분리되지 않으며 개인적 희생과 관대함, 자비와 사랑으로 자라납니다.   




<참고자료>


군국주의와 야스쿠니 신사


광주학살이 우리의 국가폭력이었다면 야스쿠니는 일본 국가주의의 상징적 체계다. 야스쿠니 문제를 다룬 화가 홍성담 씨는 야스쿠니를 그리면서 자주빛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사쿠라 꽃(벚꽃)의 색조다. 야스쿠니의 아이콘이 바로 사쿠라다. "명치유신 이후에 일본 군국주의는 일본의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예술가를 앞세워 가공된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홍성담 씨는 말한다.


본래 사쿠라는 생명력을 나타내는 생산적 정서를 반영하는데, 그걸 반대로 해석해서, 전쟁에서 천황을 위해 신민(臣民)으로 죽으면 야스쿠니 뜰에 피는 사쿠라로 환생한다는 에로틱한 국가주의로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미가제 특공대 역시 출격할 때 머리에 사쿠라 가지를 꽂고 비행에 나선다.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대만과 한국인 출신의 군인들이 안치되어 있는데, 야스쿠니는 그들을 '군신(軍神)'으로 받들며, 이들이 죽어서도 천황과 일본을 지키고 있다고 선전한다. 결국 이들은 남의 나라에 와서 천황을 위해 죽어서도 강제로 묶여 있는 셈이라고 한다. 


일본 군국주의는 가미가제 특공대 출격시 기름만 주고 올 때 기름은 채워주지 않았다. 독일 나치조차 병사들을 전쟁터로 보내면서 "적을 죽이고 돌아 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일본군국주의는 "가서 적도 죽이고 자신도 죽으라"고 명령함으로써 더 무서운 국가주의를 설파했다며 전율했다. 그들은 살아 돌아와서는 안 되었다. 죽어서 야스쿠니의 사쿠라로 피어나야 했다. 


여기서 일본 남성들이 받는 억압적 기제는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일본 포르노가 여성을 가학하는 변태적 모습을 즐긴다는 것은 이런 심리적 상태를 반증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 한류(韓流) 욘사마 열풍이 부는 것은 당연하다. 배용준이 대역한 욘사마 열풍. 일본으로 수출된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배용준은 신하와 군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기든 지든 살아서 돌아오라." 그러니 일본 여성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강요된 시커먼 고통에서 탈출하려는 욕망이 배용준에게 투영된 것"이라는 게 홍성담 씨의 해석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천주교회의 친일 전쟁 지원활동


천주교 경성교구(現 서울교구)는 1940년 11월 10일에 명동성당에서 ‘국민총력 천주교 경성교구연맹’을 새로이 결성하고 황기 2,360년 봉축식을 거행하였다. 이 자리에서 연맹은 1941년부터 매월 첫주일을 ‘애국주일’로 삼는다는 결정을 내리고 연맹의 총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신사참배를 하였다. 


그 이후 1942년 3월에는 ‘국민총력 천주교 경성교구연맹’에서 직접 <대동아전쟁 기구>를 반포하고 이 기도문을 공과(功課)에 넣어 신자들로 하여금 매일 일본군의 승리를 위해 기도하게 만들었다. 그 뿐 아니라 세부적 지침으로서 매일 아침마다 일본 황실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고, 저녁에는 전몰 장병을 위해 기도하도록 규정하였다. 이 밖에 매주 황군의 무운장구를 위한 기도를 하고, 매월 승전을 위한 기원제를 지내며, 특히 대축일마다 장엄한 시국기원제를 지내도록 지침을 정하였다. 


경성(서울)교구는 일제의 태평양 전쟁을 더욱 실제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1인 1전 헌금운동”을 전개하여 병기를 일제에 헌납하였다 그리고 1944년2월 8일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의 ‘보도특별정신대 (報道特別挺身隊)’에 경성교구연맹이 참가하기도 하였다. 


도로시 데이와 그리스도교 평화주의


도로시 데이가 가톨릭일꾼운동을 시작하면서 당장에 직면한 것 역시 평화 문제였다. 처음에 도로시는 신문을 발행하고 여러 지역을 두루 돌아다니며 가톨릭일꾼의 집을 방문하고, 대공황으로 일어난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를 기록하고, 집회에서 강연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공장 노동자들이 일으킨 연좌농성에서 캘리포니아의 떠돌이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도로시는 노동문제가 발생하거나 부당한 조건에 항거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그들을 도울 방도를 찾았다. 이러한 가톨릭일꾼운동의 활동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전통적인 본당 차원의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것이었다. 이제 세상만사가 가톨릭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가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양심은 인간체험의 중심에 있는 정의와 자유, 그리고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했다. 

실제로 도로시 데이와 가톨릭일꾼의 역사에서 가장 크게 불거진 문제는 ‘평화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예수가 제일 먼저 행한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행한 기적이었으며, 배고픈 군중들에게 빵을 먹이신 기적이었다. 그리고 예수가 마지막으로 행한 기적은, 예수를 체포하려는 사람들에게 맞서서 베드로가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입힌 상처를 치유하신 것이다. 예수는 날카롭게 명령하셨다. “칼을 치워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는 법이다.” 도로시 데이는 그 말씀이 베드로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모든 이에게 하신 말씀으로 알아들었다. 

1936년 스페인 내란이 일어나자 도로시 데이의 평화주의는 시험을 받았다. 거의 모든 미국 주교들과 가톨릭계 언론이 반공적이고 친가톨릭적이라고 하여 프랑코를 지지했다. 도로시 데이는 신문에서 사설을 통해 말했다. “우리 모두는 스페인에서 무서운 종교탄압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 그래도 우리는 개인적 국가적 국제적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에는 반대한다.” 

교회의 순교자가 된 신부, 수녀가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쓰기를 거부했던 무기를 그 사람들의 이름으로 잡음으로써 그 사람들을 명예롭게 할 것인가?” 묻는다. 그것은 그들의 순교를 허사로 돌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고 십자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용기가 우리에게 있는지 묻는다. “오늘날 전 세계는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이다. 우리 모두는 그 와중에 살고 있다. 솔직하게 우리는 성인을 찾고 있다.” 

도로시는 다른 사람들도 스페인의 신부, 수녀처럼 무장을 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위해서 죽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음의 무장해제가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의 사랑과 기도가 악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가톨릭일꾼운동의 평화주의는 중립노선을 달리지 않았다. 히틀러가 유태인을 탄압하자 뉴욕의 가톨릭일꾼들은 1935년 부둣가로 달려가 독일의 정기여객선인 브레멘호 앞에 모인 시위대에 합류하였다. 독일 대사관 앞에서 시위하고, 호소문을 통하여 “미국의 환대를 원하는 유태인들에게는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도록” 나라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호소는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고,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만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대부분은 유태인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다. 

인종차별과 나치운동의 사악함을 알고 있었으나 도로시 데이는 전쟁을 수단으로 하여 악과 싸운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전쟁은 계속되는 수난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변호하러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세계 대전에 미국이 참전하고 나서도 가톨릭일꾼운동은 전쟁에 줄기차게 반대하였고, 그 영향을 받은 젊은이들은 전쟁 교도소나 시골의 노동단지에서 일을 했다. 어떤 사람은 무장을 하지 않는 위생병으로 군복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가톨릭일꾼 신문은 성 프란치스코가 길들인 늑대 옆에 서 있는 그림과 함께 “승리 없는 평화”라는 말을 곁들여 계속 실었다. <가톨릭 양심적 반대자>란 신문도 발간하였다. 이러한 입장은 애국적인 사람들에게는 배신자처럼 느껴졌고, 많은 주교들에게는 곤란한 일이었다. 도로시는 전쟁 중이라고 해서 우리의 적을 사랑하고 우리를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라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도로시는 거듭 말했다. “우리의 삶의 법칙은 애덕의 일을 하는 것이다.” 


마침내 종전이 되었으나 도로시는 기뻐하지 않았다. 히틀러는 죽었지만 군국주의는 살아 있었고, 파시즘도 숨어서 존재할 것이다. 전쟁 때문에 원자탄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섬광과 함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파괴되었다. 도로시는 이번 전쟁에서 연합군이 이긴 것이 아니라 진정한 승자는 전쟁과 죽음이며, 이제 죽음은 인류를 말살시킬 수 있는 무기로 무장을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베트남 전쟁 때에도 가톨릭일꾼운동은 더욱 완강히 평화주의를 주장했다. 1965년 미국이 북베트남을 폭격하고 전쟁이 확대되면서 3년 안에 미군의 숫자가 51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전쟁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보였다. 방어능력이 없는 외딴 마을들이 전투기와 헬리콥터로 파괴되었다. 

예수회 신부인 다니엘 베리간은 신문에 베트남을 ‘불타는 아이들의 땅’이라고 썼다. 유니온 광장에선 가톨릭일꾼 봉사자들이 시민불복종 행위로 징집 등록증을 불태웠고, 이 자리에서 도로시 데이는 전쟁의 부도덕성을 알리고 항거의 몸짓을 지지하는 연설을 했다. 전쟁을 지지하는 자들은 이들을 ‘모스크바 메리!’라고 야유하며 “징집 등록증을 태우지 말고 너희들이나 분신하라!”고 외쳤는데, 몇 주 뒤에 이 자리에 참여했으며 가톨릭일꾼 봉사자였던 로저 르포트가 미국공관 앞에서 정말 분신하였다. 

로저는 자신의 몸을 벽 삼아 미국 전체에 들릴 수 있게 ‘아니오’라는 메시지를 외쳤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주교들은 수동적인 태도를 보였다. 아예 뉴욕대교구의 스펠만 추기경은 베트남전쟁을 ‘문명을 위한 투쟁’으로 규정하고 바오로 6세 교종의 평화협상 호소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전면승리를 요청했다. 


도로시 데이는 가톨릭일꾼운동의 애덕활동을 평화운동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놀라운 애덕활동을 평화주의로 더럽히지 말라’는 비난이 쏟아져 들어오자 이렇게 응수하였다. “우리가 굶주리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데 반해 전쟁은 기아를 가져다주었고, 우리가 괴로워 우는 이들에게 위로를 가져다주는데 반해 전쟁은 비참과 폐허를 가져왔다.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에게 해준 것은 무엇이든 –친절이든 폭력이든– 그분께 직접 해 드린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과 평화주의


한편 도로시 데이가 이끄는 가톨릭일꾼운동은 특히 평화주의와 관련해서 교회 안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수행하였는데, 토마스 머튼은 1961년부터 가톨릭일꾼 신문에 ‘전쟁의 뿌리는 두려움’이라는 연재물을 투고하기 시작하였다. 이 글은 1962년에 4월에 후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평화라는 책으로 묶여 나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토마스 머튼이 소속해 있던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돈 가브리엘 소르테스 아빠스가 전쟁과 평화에 대한 글을 더 이상 쓰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결국 토마스 머튼은 책의 원고를 한정본 책으로 만들어 비밀리에 돌리게 되었는데, 훗날 바오로 6세 교종이 된 밀라노의 몬티니 추기경도 받아볼 수 있었다. 또한 1962년 12월에는 공의회 토의자료로 교황청에 사본이 들어갔으며, 1965년에 발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인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에 중요한 내용들이 반영되었다. 


이를 테면 “도시 전체나 광범한 지역과 그 주민들에게 무차별 파괴를 자행하는 모든 전쟁 행위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범죄이다. 이는 확고히 또 단호히 단죄 받아야 한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80항)고 하였으며, 또한 공의회에서는 “양심의 동기에서 무기 사용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경우를 위한 법률을 인간답게 마련하여, 인간 공동체에 대한 다른 형태의 봉사를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현대 세계의 사목헌장, 79항)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사목헌장의 이러한 내용은 이미 1963년 초에 교종 요한 23세가 발표한 회칙 지상의 평화를 통해 확인된 것이었다. 이렇게 도로시 데이가 스페인 내란 당시부터 줄곧 견지해 오던 그리스도교적인 절대적 평화주의가 교회 안에 공적으로 받아들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