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교구 2기 사회교리 심화과정 제2강 2010년 9월 9일
이강서 신부의 [현대의 사목헌장] 강의
현대세계의 사목헌장(Gaudium et Spes)
공의회 헌장(公議會 憲章, Conciliar Constitution)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965. 12. 7
Ⅰ. 배경과 의의
이 책(가톨릭 사회교리 2)에서 소개하고 있는 문헌들은 모두 교황 문헌, 레오 13세에서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기까지 교황들이 작성, 반포한 회칙(回勅, encyclical)들인 반면,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마지막 날인 1965년 12월 7일, 즉 12월 8일 폐막 바로 전 날 선포된 공의회 문헌이다.
근대 교회사의 전환점을 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1962년 10월 11일 역사적인 막을 올렸다. 요한 23세는 재위 90일 밖에 채 안되었던 1959년 1월 25일 공의회 소집 계획을 발표했고 1961년 12월 25일 공의회를 소집했다. 요한 23세는 공의회에 세 가지 목표를 부여했다. 즉 ① 교회의 개혁, ②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화해, ③ 교회와 세상의 관계를 공의회의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의 제21차 세계 공의회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실로 거의 4년에 걸친 준비 끝에 개막됐던 것이다.
근대에 와서 세계 공의회는 자주 열리지 않았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 열렸던 세계 공의회는 종교혁명 시대인 1545-63년의 트렌트 공의회(제19차)와 교회가 근대 사상과 근대 국가들의 소행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고 느끼던 시대인 1869-70년의 제1차 바티칸 공의회(제20차)이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프랑스와 프러시아간의 전쟁 발발로 중단, 즉 무기한 연기됐었다. 이 전쟁은 교황령의 운명에 대해,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의회의 자유에 대해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의회는 다시 열리지 않았으므로 20세기 중엽 세상의 엄청난 변화 끝에 열린 새로운 공의회는 대단한 중요성을 지닌 사건이 아닐 수 없었고 실제 그러한 공의회가 되었던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처음부터 교회 자신을 다루었고
그 결과 교회에 관한 교의헌장인 「교회 헌장」(1964년 11월 21일 선포), 하느님의 계시에 관한 교의헌장인 「계시 헌장」(1965년 11월 18일 선포)을 비롯하여 전례, 교회 일치, 그리스도교적 교육, 주교, 사제, 수도자,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여러 문헌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요한 23세가 공의회를 소집할 때 가지고 있던 의향에 따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공의회는 이미 첫 회기 중 1962년 10월 20일 발표한 세상에 보내는 메시지에서부터 이 문제를 다루었던 것이다. 공의회 교부들은 이 메시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나라에서 여기 모인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모든 백성들의 불안, 영혼과 육신의 번뇌, 고통, 소망, 희망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고 있다. ⋯ 우리는 무엇보다도 가장 비천한 사람들, 가장 가난한 사람들,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 우리는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하여 아직도 인간다운 생활방식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 메시지는 이어 “이러한 까닭에 우리의 작업을 진행함에 있어서 우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속하는 모든 것을, 민족들의 참된 형제애에 이바지하는 모든 것을 중요하게 다룰 것”이라고 밝힌다. 그리하여 ‘민족들 간의 평화’ 문제와 사회 정의 문제가 명시적으로 의사일정에 포함됐던 것이다.
그러나 공의회가 개막되었을 당시에는 나중에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으로 다루어진 문제들에 관한 어떠한 준비 의안도 아직 없었다. 이에 몬티니(후일의 바오로 6세), 레르카로, 수에넨스, 되프너, 레제르 같은 추기경들은 첫 회의 때부터 이러한 결함을 비판하고 나섰었다. 이들의 발언이 결실을 맺어 1962년 12월 7일 새로운 준비 의안 목록이 배포되었다. 준비 의안은 전부 17개였고 제17의안에는 「사회의 선익 촉진을 위한 교회의 원리와 행동」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그 후 이 제목은 물론 크게 바뀌었고, 제목과 더불어 정신도 바뀌었지만 일단 시작은 되었던 것이다. 1963년 1월에 준비 작업이 교리 위원회와 평신도 사도직 위원회에 소속된 주교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혼합 위원회에 맡겨졌다. 제목은 이제 「현대 사회에서의 교회의 현존」으로 붙여졌다.
이 문헌의 최종안이 나오기까지 3년 동안 수많은 수정이 가해졌다. 이러한 수정 과정을 통해 전반적인 신학적 관점이 비교적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처음의 초안(가정, 문화, 경제, 민족들의 공동체, 평화에 대한 일련의 장들에 앞서 신학적 관점은 인간의 소명, 사회 안의 인간에 대한 2개 장만을 다루었음)이 기본적인 신학적 주제들이 훨씬 발전된 문헌으로 변하였다. 특히 수에넨스 추기경은 신학적 관점을 더욱 깊이 있게 가다듬을 것을 요청했고 다른 주교들도 뒤를 이어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이들 중에는 미래에 요한 바오로 2세가 될, 크라코프의 젊은 보좌주교 카롤 보이티와 주교도 있었다. 여기서 성찰이 집중되었던 대목은 우주 안에서의 인간 활동이 하느님의 계획과 그리스도의 사업에서 차지하는 의미 그 자체였다. 그리스도론적 관점 또한 강화되었다. 그리하여 이 문헌은 그 이전 70여 년 동안 발표됐던 교황 회칙들에서 나온 가톨릭 교회의 사회적 가르침을 종합한 것에 지나지 않은 문헌의 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준비 기간 중에 발표된 두 개의 교황 문헌은 이 문헌의 작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요한 23세가 서거하기 얼마 전인 1963년 4월 11일 발표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이다. 「지상의 평화」는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쳤다. 즉, 평화에 대한 교리, 핵무기에 대한 교리, 정치 공동체의 원리, 인권 증진에 대한 입장뿐만 아니라 요한 23세가 이 회칙에 담아 놓은 개방 정신과 모든 사람에 대한 호의의 정신, 특히 요한 23세가 잘못과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구별한 것, 중요한 사회 운동과 여기서 발생한 그릇된 주의(主義)를 구별한 것 등은 이 문헌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요한 23세는 1963년 6월 3일 서거하고 6월 21일 바오로 6세가 뒤를 이어 교황직에 올랐다. 다음 해 8월 6일 이제 제13의안이 된 세계 안의 교회에 관한 의안(이 의안은 오랫동안 제13의안으로 알려졌었음)의 작성 작업이 상당히 진척됐을 즈음에 새 교황은 그의 첫 회칙 「그분의 교회(Ecclesiam Suam)」를 발표하였다. 이제 이 회칙도 제13의안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이 회칙은 ‘대화’의 회칙으로 알려졌었고 바로 이 회칙을 통해 이 주제가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던 것이다. 한편 회칙 「그분의 교회」의 특징인 불신앙에 대한 우려는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이 무신론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도록 자극을 주었다.
「현대 세계 안의 교회」라는 제목이 붙여진 「사목 헌장」으로 인준된 이 문헌은 서론, 2개 부, 맺음말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신학적, 교리적인 반면 제2부는 윤리적, 사목적이다. 제1부는 ‘교회와 인간의 소명’이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고 4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2개 장(제1장 ‘인간의 존엄성’과 제2장 ‘인간 공동체’)은 사회생활의 여러 문제들을 다루는 장들에 대한 서론으로서 제일 먼저 작성되었다. 이어 제3장 ‘우주 안의 인간 활동’은 사실상 핵심적인 장으로, 여기서는 현대 휴머니즘의 맥락에서 ‘우주 안의 인간 활동’의 의미에 대한 신학, 인간의 모든 일상 활동이 지닌 의미 자체에 대한 신학이 깊이 있게 다루어진다. 죄의 현실이 무시되지 않고 있지만, 공의회는 빠스카 신비를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의 인간 활동의 궁극적 완성을 모든 인간 활동과 ‘새 하늘, 새 땅’, 즉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다시 바쳐드리는 영원한 나라와의 관계를 강조한다.
인류학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이며 종말론적인 이러한 맥락에서 제 4 장(‘현대 세계 안의 교회의 사명’)은 교회를 이 메시지의 전달자로서 뿐만 아니라 구원의 「성사」로, 인류가 화해하고 일치하기 위한 「성사」로 보도록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늘로부터 오지만 세상 안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공의회는 교회와 세상의 상호관계를, 교회가 인간과 세상에 바칠 수 있는 모든 것과 이들로부터 받는 모든 것을 보여 주도록 노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의회는 제2부에서 ‘몇 가지 긴급 과제’를 다룬다. 즉, 여기서 공의회는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은 원리와 빛을 명백히 보여 줌으로써’(46항) 가능한 한 인간을 도와주려고 한다. 여기서 다루는 분야는 가정(제1장), 문화(제2장), 경제 사회 생활(제3장), 정치 공동체(제4장), 평화의 증진과 국제 공동체의 촉진(제5장)이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공의회의 가르침은 특별한 권위를 지닌다. 교황에게서 나오는 가르침은 언제나 다소 개인적인 성격을 지니기 마련이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은 주교단 전체의 가르침이며, 2천여 참석 주교들의 실제적인 비판을 거친 것이라는 이점을 지닌다.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적 문헌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다른 중요 문헌들에는 다소 온당한 대접이 아닐는지 모르지만, 많은 이들이 공의회 전체를 교회 헌장(자신의 성격과 구조 안에서의 교회)과 사목 헌장(세상 안에 있으며 세상에 파견된 교회)으로 인식하고 있다. 초기 단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류 형제들에게 자신들의 존재와 그것의 궁극적 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과감히 전달하는 참된 대화보다는 세상을 향한 단순한 개방을 생각했던 이들도 있었다. 그리하여 위기가 발생하였고 심지어 신앙을 양보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의 내용을 일방적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컨대, 현세 사물의 자율성을 완전히 독립적인 것으로 보는 경우가 바로 그러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목헌장은 본질적으로 ‘인간 활동과 종교의 밀접한 관계’(36항)를 강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밀접한 관계를 두려워하거나 믿지 않으려는 이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공의회의 근본 메시지는 결코 이분법적이거나 이원론적인 것이 아니며 세상 안에서의 생활과 하느님 안에서의 생활의 통합을 지향하는 것이다.
공의회 이후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초기의 동향들을 목격하면서 30년이 지난 오늘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을 다시 읽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문헌은 신앙과 생활의 관계에 대한, 교회와 세상 및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와의 관계에 대한, 그리스도인들과 비그리스도교 형제들 및 비신자 형제들과의 관계에 대한 대헌장이다.
한편 공의회 이후 시대에 속하는 최초의 교황이라고 할 수 있는 요한 바오로 2세는 예컨대 처음 두 회칙을 작성하는 데 있어서 「현대 세계의 사목헌장」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1979년에 발표된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is)」는 공의회의 인류학 및 그리스도론과 깊이 연결 짓고 있다. 교황은 “성자께서는 당신의 화신(化身)으로 어떤 의미에서 당신을 모든 사람과 일치시키신 것이다.”(22항)라는 구절을 자주 인용한다. 그리고 교황은 인간을 교회를 위한 ‘길’로 소개한다.
이어서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에 인간의 노동에 관한 회칙 「노동하는 인간(Laborem Exercens)」을 발표한다. 이 회칙 또한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특히 노동의 의미와 노동의 영성(24-27항)을 다룰 때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 제1부 제3장(‘우주 안의 인간 활동’)의 중요한 구절들이 거의 모두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교황은 노동의 영성을 계발하는 것은 교회의 의무이며, “이 노동의 영성은 사람들이 노동을 통하여 창조주이며 구세주이신 하느님께 보다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며, 인간과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게 하며 ⋯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깊게 해 줄 것”(24항)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목헌장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교회는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이 다룬 주요 문제들을 계속 깊이 있게 검토해 나가야 할 것이다.
Ⅱ. 사목헌장의 내용
머리말(1-3항)
이 문헌은 머리말에서 교회의 사람들과 세상의 사람들의 연대성을 표현하고 인간에 대해 인류 가족과 대화하고자 하는 공의회의 의지를 표시한다. 공의회는 인간의 숭고한 소명과 이러한 소명에 부합하는 형제적 공동체의 건설에 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다고 여긴다. 공의회는 여기서 ‘세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신학적 정의를 내릴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 문헌이 언급하고 있는 세상이란 인간을 뜻함에 다름 아니다. 1항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 특히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도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번뇌인 것”(1항)이라는 선언은 이 문헌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길잡이가 된다.
서론(4-10항)
이 문헌은 여기서 현대 세계와 인간의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서술한다. 이 문헌은 요한 23세의 사회 회칙들이 보여준 전형적인 모범에 따라 사회 분석을 통해 「시대의 징표」를 탐구한다.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4항)*
이 문헌은 이 시대를 “심각하고도 신속한 변화가 점차로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4항)로 규정하면서 현대 세계를 특징짓는 시대의 징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인류가 오늘과 같은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을 누려 본 적은 일찍이 없었다. 그렇지만 세계 인구의 상당한 수는 아직도 기아와 빈곤에 신음하고 있으며 문맹자도 적지 않다. 인간이 오늘과 같이 강한 자유 의식을 가져 본 일도 일찍이 없었건만 다른 편으로는 사회적 내지 심리적 노예화의 새로운 형태가 대두되고 있다. 세계는 필연적 연대성을 가지고 서로 종속되어 하나를 이룬다는 의식은 생생하면서도, 서로 싸우는 힘의 대립으로 극도의 분열을 자아내고 있다.”(4항).
기술의 발전과 실증적·과학적 사고방식이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제 “인류는 정적인 세계관에서 동적, 혹은 발전적 세계관으로 넘어가고 있다.”(5항).
공업화, 도시화, 정보의 보급, 이민 및 「사회화」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공업화된 사회 형태는 점차로 확대되어 어떤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하는 동시에 수세기 동안 계속된 사회생활의 개념과 조건을 완전히 변질시키고 있다. 비슷하게, 도시와 도시인의 증가나 혹은 농촌에까지 도시생활이 옮아가는 경향으로 말미암아 도시의 문명과 그 매력은 증가되고 있다.
발전을 거듭하는 새로운 매스 미디어는 사건들을 알리며 사상과 감정을 극도로 신속, 광범하게 전파하여 많은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써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거기서 자기 생활양식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도 경시할 수 없다.
이처럼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의 인간관계는 끊임없이 증가되며 동시에 “사회화” 자체가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그것이 언제나 마땅한 인격의 성숙과 참된 인간관계(“인간화”)를 촉진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진화는 이미 경제발전과 기술 진보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선진국에 있어서 더욱 명백히 나타나고 있지만 공업화와 도시화의 혜택을 누리려고 희망하는 후진국에 있어서도 이런 움직임이 없지 않다.(6항)
또 하나의 특징은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의 긴장 상태이다. 이러한 새로운 사태가 종교 분야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이 문헌은 여기서 “마술적인 세계관과 아직 남아있는 미신적 요소를 종교에서 깨끗이 버리고”(7항),* 보다 인격적인 신앙을 요구하여 “하느님께 대한 보다 생생한 인식”을 갖도록 하는데 이바지하는 비판 의식이 강화되고 있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동시에 이 문헌은 “이 때문에 종교생활 실천에서 이탈하는 대중이 격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하느님이나 종교를 부정하거나 이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이제는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대중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급속한 상황 변화는 인간 안에, 가정 안에, 그리고 인류 사회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모순과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새로운 모순과 불균형을 발생시킨다.
“인간 내부에 있어서도 현대적 실천 이성과 이론적 사색 사이에 가끔 불균형이 생겨 이론적 자기 지식의 총체를 지배하지도 못하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원만히 종합하지도 못한다.…
가정에 있어서 인구 증가, 경제 및 사회생활의 여러 조건들의 중압, 세대 차에서 생기는 난관, 남녀 간의 새로운 사회관계 등이 가정의 조화를 깨뜨리고 만다.
또한 여러 종족들 사이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계층 사이, 부강한 민족과 빈약한 민족 사이, 평화를 도모하려는 욕망에서 여러 백성들이 만들어 놓은 국제기구와 이념 선전의 야심이나 국가 혹은 단체의 집단적 이기주의 사이에 대단한 불균형이 개재한다.”(8항)
동시에 가난한 사람들, 개발도상국 국민들, 기아에 신음하는 사람들, 여성들, 노동자들, 농민들 등을 위한 보다 나은 정치, 경제, 사회 질서를 확립할 필요성에 대한 확신이 커져 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문명의 혜택은 실제로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질 수 있고 또 베풀어져야 한다는 확신을 모든 백성이 가지게 되었다.”(9항)*
공의회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전혀 비난하지 않는다. 공의회는 오히려 거기서 깊고 보편적인 소망, 즉 인간의 존엄성과 모든 민족들을 포용하는 하나의 세계 공동체에 부합하는 생활에 대한 소망을 식별한다. 공의회는 이러한 소망을 실현하는 길은 열려있고 인간은 자신의 힘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이 길로 전진해 나갈 책임을 의식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현대 세계가 고민하는 불균형은 인간 마음속에 뿌리박힌 보다 근본적인 불균형에 직결되어 있는 것”(10항)이므로, 이 문헌은 이어 내부적으로 여러 가지 서로 대립되는 요소를 지니고 있는 인간 자신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헌은 많은 사람들이 현대 세계의 발전을 바라보며 인생의 의미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불행에 짓눌려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겨를조차 없다고 지적한다. 공의회는 인간의 존재 의의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그 해답으로 “인류 역사 전체의 열쇠요 중심이며 목적이신”(10항)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한다.
제1부 교회와 인간의 소명(11-45항)
제1부는 4개 장, 35개 항으로 나뉘어 교회와 인간의 소명에 대해 다룬다.
제1부의 기본 방향은 11항과 40항에 제시되어 있다. 공의회의 의도를 이해하려면 공의회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나 가톨릭 신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따라서 전 인류를 대상으로 하여 이들에게 말하고자 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제1부에서 교회에 관한 장은 의도적으로 제일 마지막 자리, 즉 네 번째 자리(제4장)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각 장에서도 다루어진 내용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어보는 일은 제일 마지막 항에서 다룬다.
이 문헌에서 공의회는 다음과 같은 도식을 따른다. 즉 상황 또는 개념을 분석하여,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판단을 제시하고, 이를 근거로 하여 거기서 생길 결과를 언급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은 여러 장들과 항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도식은 다루어지는 내용마다 신학적 분석, 또는 교리에 따른 분석으로 출발하거나 관련된 성서의 말씀을 간략하게 설명하기를 기대했었던 공의회 교부들에게는 호감을 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러한 기대가 반영되었더라면, 이 문헌은 갈라진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서는 커다란 동의를 얻어냈을는지 모르지만 이 문헌의 과녁인 ‘세상’은 맞히지 못했을 것이다.
제1부의 서론 격인 11항에서는 이 문헌의 근본 의도를 제시하고 공의회의 가르침이 “인류와 그 속에 있는 하느님의 백성이 서로 봉사한다는”(11항)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피력한다.
제1장 인간의 존엄성(12-22항)
제1장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룬다. 그것은 공의회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주제이다. 이 문헌은 여기서 우선 신자에게나 비신자에게나 인간이 세상 만물의 중심이요 정점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러면 인간은 무엇인가?” 공의회는 여기서 교회가 줄 수 있는 두 가지 해답을 제시한다. 즉, 그것은 (1)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에 따라 자유와 지성을 갖춘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2) 혼자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문헌은 이어 최초의 죄, 인간의 선과 악 사이의 분열, 그리스도에 의해 인간이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됨에 대해 언급한다. “인간은 자신 안에서 이미 분열되었다. 이 때문에 개인 생활이나 집단생활이나 인간 생활 전체가 선과 악, 빛과 어두움 사이의 극적인 싸움으로 나타난다. ⋯ 그러나 인간을 구원하시고 인간에게 힘을 주시려고 주께서 친히 오시어 인간을 내적으로 재생시키시고 인간을 죄의 노예로 삼고 있던 ‘이 세상 두목」’(요한 12, 31)을 밖으로 쫓아내시었다.”(13항)
이 문헌은 이어 인간의 육체적 성격을 인정하고 인간이 자신을 자연의 한 조각이거나 인간 사회의 한 무명 요소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영혼의 실재에 대해 언급한다. 이어서, 인간의 지성과 그것의 예지 안에서의 완성에 대해 언급하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예지로는 [선진국들보다] 풍요한 여러 국가들이 다른 국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15항)을 지적한다.
이 문헌은 이어 인간의 양심에 대해 언급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은 양심에 따를 자유에 달려있다는 점을 밝히고 “불가항력의 무지 때문에 양심이 오류를 범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양심이 그 존엄성을 잃지는 않는다.”(16항)
이 문헌은 이어 인간의 자유에 대해 다룬다. 이 문헌은 현대인이 자유를 열심히 추구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필요로 하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개인의 자유행동을 인정한다.
이 문헌은 또한 죽음에 대해 다루면서, 이 문제에 대해 구세주의 구원 은총으로 육체의 죽음에 대해 승리할 것이라는 그리스도교적 해답을 제시한다.
이어 이 문헌은 하느님과의 친교를 이루어야 할 인간의 소명에 대해 언급한 다음 무신론에 대한 교회의 입장에 대해 다룬다(19-21항).
이 문헌은 우선 무신론을 하느님과의 깊은 생명의 결합을 통한 완전한 인간 해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종교를 노골적으로 배격하는 현대의 지극히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면서, 무신론의 형태와 근원에 대해 설명한다. 이 문헌은 특히 무신론의 원인에 대해 “무신론 발생에 적지 않은 책임을 신앙인들이 질 수도 있다. 자신들의 신앙 배양을 등한시하거나 교리를 잘못 설명하거나 종교생활, 윤리생활, 사회생활 면에서 결점을 드러냄으로써 하느님과 종교의 참 모습을 보여주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19항) 이 문헌은 여기서 무신론을 단호히 배격하는 교회의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신긍정(神肯定)이 인간 존엄성에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21항)고 강조한다. 이 문헌은 또한 “무신론을 시정하는 길은 오로지 올바로 해석된 교리와, 교회의 그 지체들의 완전한 생활뿐”(21항)이라고 지적하면서,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정의와 사랑을 특히 빈곤한 사람들을 위해 실천함으로써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한편 이 문헌은 비록 교회가 무신론을 단호히 배격하지만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로 건설하는 데에 함께 노력할 것”(21항)을 요청하고 있음을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육화된 말씀의 신비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신비를 떠나서는 인간의 신비가 참되게 밝혀지지 않는다.”(22항)는 점을 밝힌다. 또한 이 문헌은 여기서 무신론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빠르게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밝힌다.
제2장 인간 공동체(23-32항)
제2장은 인간 공동체에 대해 다룬다. 이 장의 서론 격인 23항에서 제2장에서 다룰 주제들을 소개한다. 즉, 그것은 현대 세계의 기술 발전이 인간들의 상호의존성을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들의 형제적 대화는 기술발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공동체 안에서 완성되는 것이며 이는 이들의 완전한 정신적 존엄성의 상호 존중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 문헌은 인간 사회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은 이미 여러 교황들에 의해 제시되었으므로 여기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상기시키는데 그친다.
이 문헌은 우선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일체성과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인간 소명의 공동체성을 설명한 다음, 개인과 사회 간의 본질적인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개인의 인격 향상과 인간사회의 발전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 인간은 본성적으로 사회생활을 꼭 필요로 하기에 모든 사회제도의 근원도 주체도 목적도 인간이며 또 인간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25항)
이 문헌은 또한 사회화가 증대되고 있는 현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인간이 사회 환경에 의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 문헌은 이어 공동선을 정의하고 그 개념을 하나의 집단이나 국가의 범위를 넘어서 온 인류 가족에게로 확대한다.
“공동선이라고 하면 집단이나 구성원 개개인으로 하여금 보다 완전하고 보다 용이하게 자기완성을 달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생활상 여러 가지 조건들의 총체를 말한다. 그런데 상호의존 관계가 날로 긴밀해지고 점차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가기 때문에 오늘날 공동선은 더욱 세계적인 것으로 확대되고 인류 전체에 관계되는 권리와 의무까지를 내포하게 되었다. 따라서 어떤 집단이나 다른 집단들의 필요와 정당한 요구를 고려해야 하며 인류 가족 전체의 공동선까지를 고려해야 한다.”(26항).
이 문헌은 여기서 또한 인간이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인간에게 주어져야 할 여러 가지 권리들을 제시한다. “예컨대 의식주, 신분 선택의 자유와 가정 형성의 권리, 교육과 노동에 대한 권리, 명예와 존경에 대한 권리, 정당한 보도를 들을 권리, 자기 양심의 바른 규범을 따라 행동할 권리, 사생활을 수호할 권리, 종교적 분야까지 포함해서 정당한 자유를 누릴 권리 등이 인간에게 주어져야 한다.”(26항). 이 문헌은 이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사회질서와 사회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복지를 목적 삼아야 한다. 사물의 질서가 인간 질서에 종속될 것인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회질서는 날로 발전해야 한다. 진리에 바탕을 두고 정의 위에 건설되어 사랑으로 활기를 띄어야 한다. 사회질서는 또한 자유를 누림에 있어서 날로 더욱 인간적인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려면 정신의 쇄신과 더불어 광범한 사회변혁이 있어야 하겠다.”(26항). 이처럼 공의회는 작위가 아니라 부작위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보수주의를 찬성하지 않는다. 교회는 세상의 기존 질서를 보장하는 현상유지 세력이 아니다.
이 문헌은 이어 실제적이며 긴급한 중요성을 갖는 문제로 인간에 대한 존경을 강조한다. 즉, 이 문헌은 이웃을 ‘또 하나의 자신’으로 여기고 어떤 이웃이든지 예외 없이 사랑할 것을 강력히 권고하고, 아직도 자행되고 있는 인간을 거스르는 잔학행위를 단죄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사회, 정치, 종교 문제에 있어서 우리와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는 사람들까지도 우리는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28항)고 강조하면서 그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촉구한다. 이 문헌은 이어 “오류와 오류를 범하는 사람을 구별할 것”과 하느님께서 금하시는 대로 “어느 누구의 마음 속 죄도 판단하지 말 것”(28항)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계명을 상기시킨다.
이 문헌은 이어 아직도 차별대우, 불의한 불평등, 노예화 등이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 모든 인간의 기본적 행동을 인정할 것을 촉구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순전히 개인주의적인 윤리관을 비난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사회의 법규 및 규정, 조세 윤리, 위생법, 운전법규 등을 준수할 것을 촉구한다. 이 문헌은 또한 인간의 구원도 개별적으로 베풀어진 것이 아님을 상기 시킨다. 백성, 계약, 형제애, 사랑, 교회 등이 핵심적인 말들이다.
제3장 우주 안의 인간 활동(33-39항)
제3장은 우주 안에서의 인간 활동에 대해 다룬다. 이 장의 서론 격인 33항은 다시 한 번 기술과 사회화를 출발점으로 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기서 인간은 한 때 초인간적인 힘에 의존하던 많은 혜택을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33항)
이 헌장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인간의 개인적, 사회적 활동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34항 참조) 여기서 공의회는 인간 활동을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수행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므로 인간 활동은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전혀 상충하거나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이 문헌은 이어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을 또한 완성하며, 이러한 완성에 있어서 외적 재산의 소유가 결정적인 것은 아닌 반면, 기술의 발전은 그 물질적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문헌은 이어 현세 사물의 자율성에 대해 언급한다. 공의회는 자율성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것을 인정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의회는 “모든 학문 분야의 탐구는, 그것이 참으로 과학적 방법을 따르고 윤리 규범을 따라 이루어진다면, 절대로 신앙에 대립될 수는 없다.”(36항)고 선언한다. 공의회는 또한 “학문의 정당한 자율성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대립과 논쟁을 일으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신앙과 학문은 서로 매치되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놓는 정신태도는, 간혹 신자들 가운데도 없지 않았지만,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36항)고 밝힌다.
이 문헌은 여기서 오늘날 발전을 과신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빠질 수 있는 오해에 대해 언급한다. 발전은 긍정적인 과정만이 아니다. 창조적 사명에 대한 열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좋지만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현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이 장은 세상의 종말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서 공의회는 성 바오로와 함께 사랑의 업적은 남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이 문헌은 종말론적 희망이 “현재의 이 땅을 개발하려는 노력을 약화시켜서는 안 될 것이고 오히려 그런 의욕을 자극시켜야 할 것”(39항)이라고 강조한다. 이 장은 “인간의 본성과 노력으로 얻어진 훌륭한 결실을 전부 다 주님의 성령 안에서 주님의 계명을 따라 널리 지상에 전파한 후에, 모든 때를 씻어 버리고 광채 찬란하게 변모된 그것들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39항)이라는 기대를 표시하며 끝맺는다.
제4장 현대 세계 안의 교회의 사명(40-45항)
40항은 제4장과 앞의 3개 장을 연결 짓는다. 제4장에서 공의회는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신비’로 규정하며 이에 대해 제시한 모든 것을 전제로 하면서 교회는 “이 세계에 존재하고 세계와 함께 살며 활동한다.”(40항)는 점에서 교회의 사명을 고찰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인류 가족을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데에 다른 그리스도 교회들이 이바지한 바를 평가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교회가 “복음의 길을 닦기 위하여 세계로부터 개인이나 인간 사회의 재능과 노력에 의한 큰 도움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받을 수 있음”(40항)을 인정하기까지 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교회 사명을 명시적으로 「종교적 질서」에 관한 분야로 국한시킨다. 이 문헌은 또한 교회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어떤 사명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부인한다. 이 문헌은 단지 교회가 자신의 종교적 사명에 따라 인간 공동체에 특히 자선사업을 통해 이바지할 수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문헌은 다시금 교회를 하느님과의 일치와 인간들 간의 일치의 성사(교회헌장 1항 참조)로 정의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또한 “교회는 그 사명과 본질에 따라 인류 문화의 어떤 특수형태나 어떤 특정 정치, 경제, 사회 체제에 얽매이지 않는다.”(42항)는 점을 밝힌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교회는 보편적 일치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의회는 또한 여기서 교회가 지원하고자 하는 국제기구들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은 희망을 피력한다. “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개인과 가정의 기본 권리와 공동선의 요구를 인정하는 모든 정치체제 밑에서 스스로 자유로이 발전하는 것 외에 더 바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42항)
공의회는 이어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들의 지상임무를 이행하도록 촉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되는 잘못을 피해야 한다. 하나는 종교생활 때문에 현세 임무를 등한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세 활동은 종교생활과 전혀 무관한 것처럼 현세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다. 공의회는 “현대의 중대한 오류 중의 하나”(43항)인 신앙과 일상생활의 분리를 제거하도록 촉구한다. 공의회는 또한 여기서 “세속적 임무와 활동은 비록 독점적으로는 아닐지라도 평신도들의 고유 영역”(43항)*이라고 천명한다(평신도 사도직 교령 5-7항 참조). 공의회는 여기서 “사목자들이 모든 일에 정통하여 무슨 문제가 생기든지 아무리 중대한 문제가 생기든지 언제나 즉석에서 구체적인 해답을 줄 수 있다거나 또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한다.”(43항)고 밝힌다. 이것은 새롭고 중요한 선언이다. 그러한 일은 평신도들의 고유 임무이다. 공의회는 이어 그리스도인들은 같은 문제에 대해 서로 진지한 태도로 임하면서도 달리 판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밝힌다. 즉, 공의회는 일원론인 사고방식을 단호히 배격한다. 다원 사회에서 흔히 있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두 가지 지침을 제시한다. 즉, “아무도 교회의 권위를 빙자하여 배타적으로 자기주장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진지한 대화를 통하여 서로 깊이 이해하고 서로의 사랑을 실천하며 공동선을 첫째 관심사로 삼아야 하겠다.”(43항)는 것이다. 이 문헌은 이어 평신도들과 성직자들에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증인이 되어야 할 그들의 임무를 상기시킨다.(여기서는 평신도를 성직자보다 먼저 거명한다.) 공의회는 이어 세상에 대해 교회가 저지른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면서 신자들에게 정화와 쇄신을 강력히 권고한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직자건 평신도건 그 멤버들 가운데는 천주 성신께 불충실한 사람도 없지 않았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오늘도 교회에서 선포하는 메시지와 복음을 위탁받은 사람들의 인간적 나약성 사이에 상당한 거리가 상존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런 결함에 대한 역사의 판단이 어떻든 간에, 우리는 이런 잘못을 자인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함으로써 복음 선포에 지장에 되지 않도록 힘써야 하겠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모이신 교회는 교회의 모습에 그리스도의 표지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그 자녀들에게 정화와 쇄신을 끊임없이 권고하는 바이다.”(43항)
공의회는 이어 교회가 ‘세계’에서, 즉, 인류의 역사와 발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음을 밝히면서, 사목자들과 신학자들에게 “현대 세계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도록” 권한다. 공의회는 또한 여기서 “교회는 교회를 반대하거나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의 반대에서도 많은 이익을 얻었고 또 얻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44항)는 점을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교회는 ‘구원의 보편적 성사’임을 다시금 밝히면서, “역사와 문명이 열망하는 초점”(45항)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이 장을 끝맺는다.
제2부 몇 가지 긴급 과제(46-90항)
제2부는 5개 장, 45개 항으로 나뉘어 오늘날 교회와 세계가 관심을 갖는 몇 가지 긴급한 문제들을 다룬다.
제1장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47항-52항)
제2부 제1장은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 촉진에 대해 다룬다.
현대의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때 공의회가 이 문제를 제일 먼저 다룬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교회 각계각층에서 수많은 의견서들이 공의회에 제출되었고, 이 장은 평신도들, 특히 공의회의 평신도 참관인들과의 자문을 거쳐 작성되었다. 공의회가 결혼과 가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여기서 만이 아니다. 공의회는 교회헌장(11, 35, 41항), 사목헌장(12, 61, 67, 87항), 평신도 사도직 교령(10, 29항), 그리스도교적 교육에 관한 선언(3, 6, 8항)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우선 가정은 사회의 기초임을 밝히고 결혼을 해치는 요인으로 이혼, 자유연애, 과도한 이기주의, 다처주의, 향락주의, 현대의 경제, 사회, 정치 등의 생활 조건, 인구 팽창 등을 들고 있다.
이 문헌은 이어 결혼은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48항)는 것을 재확인하면서 사랑의 핵심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토대로 하여 결혼의 성사성(聖事性)을 설명한다. 이 문헌은 또한 여기서 특히 자녀들의 의무에 대해 언급하고 결혼과 가정의 임무는 “부부애와 풍부한 자녀 번성과 단합과 충실로서뿐 아니라 가족 전원의 사랑의 협력으로써 구세주를 세상에 생생하게 현존시켜 드리며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48항)임을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부부의 참된 사랑’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그 사랑은 어떠한 것이며 무엇을 만들어 내는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것은 “혼인의 고유한 행위로써만 독특하게 표현되고 완성되는 것”(49항)임을 밝힌다. 따라서 공의회는 혼인 행위가 “진정 인간답게 행해진다면” 윤리적으로 품위 있는 것임을 밝힌다. 이 문헌은 여기서 결혼에 대한 여론은 신자 부부가 사회에서 보여 주는 증거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 문헌은 또한 자녀들이 적기에 적절한 성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이 문헌은 이어 자녀의 출산과 교육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제는 오랜 세월 일방적으로 가톨릭 윤리를 지배해 온 것이다. 그러나 이 문헌은 명시적으로든 암시적으로든 매 혼인 행위마다 그 자체가 출산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또는 지향해야 하는 것으로 본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결혼은 그 전체로 볼 때 당연히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고 말할 따름이다. “부부는 이 의무 수행으로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사랑에 협력하며 말하자면 그 사랑을 해석하는 것이다.”(50항). 여기서 사용된 표현은 부부는 순전히 생물학적인 맹목적 자연 법칙에 따르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을 제멋대로 신뢰하여 자신을 우연에 맡겨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책임성 있는 부성과 모성이 고려해야 할 요인들을 언급하고 자녀 출산(시기, 수)에 대한 최종 판단은 부부에게 달려있다고 밝힌다. 이 문헌은 또한 “혼인은 자녀 생육만을 위해서 세워진 것이 아니다.”(50항)라고 밝히면서 자녀가 없는 부부도 완전한 혼인생활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확인한다.
이 문헌은 이어 자녀수를 증가시킬 수 없게 하는 어려운 생활 조건 때문에 자녀수를 증가시킬 수 없는 부부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하고 부부생활의 절대적인 금욕의 위험을 매우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생명은 그 수태되는 순간부터 성심껏 보호해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가증할 죄악”(51항)이라고 단언한다.
이 문헌은 이어 인간 성생활의 고유한 존엄성을 상기시키면서, “부부 행위가 진정 인간 품위에 알맞게 행해지면 엄숙한 것으로 존중되어야 한다.”(51항)는 점을 다시금 천명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책임성 있는 산아 조절에 있어서 행위의 윤리성은 올바른 의향과 동기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점을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개인들과 사회의 건강한 조건은 안정된 가정에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가정의 본질, 가정에서의 사람들의 임무, 가정에 대한 국가의 의무에 대해 다룬다. 이 문헌은 또한 여기서 생물학, 의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전문가들에게는 산아 조절의 가능성을 더욱 탐구하도록, 사목자들에게는 부부들을 도와주고 격려해 주도록, 그리고 부부들에게는 그리스도 사랑의 신비의 충실한 증인들이 되도록 권고한다.
제2장 문화 발전의 촉진(53-62항)
제2부 제2장은 3개 절, 10개 항으로 구성되어 문화 발전의 올바른 촉진 문제를 다룬다. 서론격인 53항에서 이 문헌은 우선 「문화」를 “인간이 정신과 육체를 연마하고 발전시키는데 이용하는 모든 사물”로 정의한다. 이 문헌은 이어 “사물의 이용, 노동, 자기표현, 종교의 실천과 관습의 형성, 입법과 법 제도의 설립, 학문과 예술의 발전, 미의 발굴 등의 방법이 서로 다른 데에서 생활의 서로 다른 공동 조건과 생활 수단의 서로 다른 조작 방법이 생기는 것”이므로 “인간 문화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내지 사회적 면을 보여 주며, ⋯ 이런 뜻에서 다수의 문화를 논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제1절 현대 세계의 문화의 상황
이 문헌은 제2장의 제1절에서 4-10항에서와 마찬가지로 현대인의 생활조건이 사회적 또는 문화적 견지에서 깊이 변화하였음을 다시 지적하고 문화들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점차 “보다 보편적 형태의 문화”(54항)가 마련되어 간다고 말한다.
이 문헌은 이어 “그 공동체의 문화를 창조하고 꾸미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자각을 가진 남녀의 수가 날로 증가되고 있다.”(55항)고 지적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전 세계적인 문화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우리 자신을 “무엇보다도 형제와 역사에 대한 책임 수행에 입각해서 인간을 규정지을 새로운 ‘휴머니즘’의 증인들”로 여긴다. 이 문헌은 이어 현대문화의 발전 방향에 대해 “오늘의 인류 문화는 인간의 온전한 인격을 올바로 조화시켜 향상시키고, 사람들에게 맡겨진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발전해야 한다.”(56항)고 지적한다.
제2절 올바른 문화 발전의 원리
이 문헌은 제2장의 제2절에서 올바른 문화 촉진의 몇 가지 원리를 제시한다.
이 문헌은 우선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 희망은 보다 인간다운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과 협력해야 할 의무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강화시킨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한다. 문화는 창조사업에 있어서의 하느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학문과 예술은 하느님의 예지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므로 이 문헌은 이러한 현대의 과정에서 “인간 정신은 사물의 노예 상태에서 보다 자유롭게 해방되어 보다 쉽게 창조주를 섬기고 관상할 수 있도록 향상될 수 있는”(57항) 가능성을 본다. 동시에 이 문헌은 “현대의 발명을 과신하는 나머지 인간은 스스로 만족스럽게 여기며 더 높은 것을 찾지 않게 될 위험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이 같은 불행은 현대 문화의 필연적 결과도 아니며 또 그 때문에 현대 문명의 적극적 가치를 부정하도록 유혹을 받아도 안 된다.”고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복음과 인간 문화와의 관계를 다룬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시 안에서 다양한 종류의 문화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분의 메시지를 선포하기 위해 교회는 ‘개별 문화들의 소산’을 이용한다. 교회는 이런 문화들 중 어떠한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것들을 풍요롭게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쇄신한다. “이같이 교회는 그 고유의 임무를 수행하는 그것 만으로써도 인간적 내지 시민적 문화를 촉진하고 격려하며 전례 행위를 포함한 교회 활동으로써 사람의 내적 자유를 길러준다.”( 58항)
이 문헌은 이어 문화는 “인격의 전체적 완성”과 “인류 사회 전체의 행복”(59항)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문화의 발전을 위한 정당한 자유를 요청하며 고유의 원리를 따라 자율적으로 활동할 권리를 일종의 불가침의 권리로 인정한다.
신앙과 이성의 「두 가지 구별된 인식 계열」(제1차 바티칸 공의회)을 토대로 하여, 공의회는 문화와 예술과 학문의 고유한 방법과 원리를 인정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인간은 윤리 질서와 공익을 보장하는 한 연구의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예술의 자유가 있으며 공적 사건들에 대해 알 권리가 있음을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문화에 관한 공권력의 한계를 상기시키면서 “무엇보다도 문화가 제 목적을 이탈하여 정치권력이나 경제 세력에 강제로 예속되는 일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59항)고 강조한다.
제3절 문화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몇 가지 긴박한 임무
제2장의 제3절은 문화 분야에서의 그리스도인들의 몇 가지 매우 긴박한 의무를 다룬다. 이 문헌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런 차별 없이 인격 존엄성에 부합되는 문화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고 실현되도록 끊임없이 노력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공의회는 특히 이제까지 그러한 권리가 거부되었던 사람들을 생각한다. 공의회는 또한 여기서 “여성 고유의 필요한 문화생활 참여를 인정하고 장려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60항)라고 강조한다.
여러 분야의 학문과 예술을 종합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현대에는 더욱 어려워졌지만, “지성, 의지, 양심, 형제애 등의 고상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전체적 인간상을 유지할 임무는 각 사람에게 남아있다.”(61항) 가정과 노동시간 단축은 이에 대해 이바지할 수 있다. 여기서 공의회는 여가, 취미생활, 관광, 스포츠를 공개적으로 찬성한다.
공의회는 이어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우호 관계는 “우연한 사정으로” 언제나 아무런 곤란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다. 공의회는 이런 어려움들에 대해, 그것들이 “반드시 신앙생활에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신앙을 보다 정확히,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만드는 정신의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62항)고 지적한다. 공의회는 특히 이러한 어려움들이 신학과 사목에 제기하는 임무(과제)에 대해 언급한다. “사실, 과학, 역사학, 철학 등의 새로운 연구와 발견은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이 새로운 문제들은 실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며 신학자들의 새로운 탐구도 요구한다. 그 뿐 아니라, 신학자들은 신학의 고유한 방법과 요구를 따르면서도, 언제나 동시대 사람들에게 교리를 전하기 위하여 보다 적합한 방법을 모색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 사목활동에 있어서는 신학 원리 뿐 아니라 세속 학문, 특히 심리학과 사회학의 발견들을 충분히 인정하고 이용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신자들도 보다 순수하고 보다 원숙한 신앙생활로 인도될 것이다.”(62항) 공의회는 여기서 문학과 예술이 그 인간적 노력을 통해 인간 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높이 평가하면서, 문예인들에게 교회는 창작 활동을 인정하고 그 자유를 존중한다는 것을 밝힌다.
공의회는 이어 신자들에게 동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것을, 자신들의 교육을 향상시켜 종교심과 도덕감이 자신들의 학식과 함께 보조를 맞추어 진보하도록 할 것을 권고한다. 공의회는 또한 여기서 신학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전문적인 신학자들은 다른 학문의 연구자들과 협력해야 하며 동시대와의 교류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공의회는 또한 많은 평신도들이 신학을 연구할 것과 이들 평신도 신학자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신학 연구에 새로운 자극을 줄 것을 촉구한다. “성직자나 평신도가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연구와 사색의 정당한 자유와 각기 전문 분야에 대한 자기 의견을 겸허하고 용감하게 발표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62항)
제3장 경제-사회생활(63-72항)
제2부의 제3장은 2개 절, 10개 항으로 구성되어 경제생활에 대해 언급한다. 이 장은 그러나 직접 경제에 대해서가 아니라 경제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 생활, 사회생활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헌은 우선 현대 경제의 긍정적 측면을 언급한 다음, 가장 큰 관심사로 넘어간다. 즉, 그것은 경제가 인간에게 끼칠 수 있는 피해이다. 이 피해는 한편으로는 경제 만능주의 사고방식에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특히 사회적 불평등에서 오는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특히 경제적으로 발전한 지역에 있어서, 마치 경제의 지배를 받는 것 같으며 그들의 개인 생활과 사회생활 거의 전부가 경제 만능주의에 물들어 있다. ⋯ 무수한 대중이 생활필수품도 소유하지 못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저개발 지역에 있어서도, 호화로운 생활로 재화를 낭비하고 있다. 사치와 빈곤이 공존하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지대한 결정권을 누리고 있는데 다수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 빼앗기고 가끔 비인간적인 생활 조건과 노동 조건에 처하게 된다.
비슷한 경제적 내지 사회적 불균형은 농업, 공업, 서비스업 사이와 동일 국가의 여러 지역 사이에도 개재한다.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대립은 날로 더욱 커지고 있으며 그것은 세계 평화를 위협할 수도 있다.”(63항)
이에 공의회는 “경제·사회생활의 많은 개혁”과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의 전환”을 촉구한다.
제1절 경제 발전
이 문헌은 제3장의 제1절에서 경제 발전 문제를 다룬다. 공의회는 여기서 현대 경제의 동태적 확장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리면서, “생산의 기본 목적은 단순한 생산품의 증가나 수익이나 지배 권력이 아니라 오직 그것은 인간에게 대한 봉사인 것”(64항)이라고 강조한다. 공의회는 또한 “경제 활동은 윤리 질서 내에서 고유의 방법과 고유의 법칙을 따른다.”는 점을 인정한다.
공의회는 이어 한편으로는 경제력을 장악하고 있는 개인들의 집단에 대한 통제,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나 소수의 경제 강대국에 대한 통제와 이들의 조정 및 참여에 대해 언급한다. “경제 발전은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것은 과도한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인간이나 집단의 전제에 맡기거나 한 정치 단체나 몇몇 강대국의 전제에 맡겨서는 안 된다. 그와 반대로 각계각층에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또 국제 관계에 있어서는 모든 국가들이 경제 발전 방향 제시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65항) 공의회는 여기서 또한 “그릇된 자유를 빙자하여 필요한 개혁을 반대하는 이론과 생산의 집단 조직을 개인과 단체의 기본 권리에 선행시키려는 이론은 다 같이 오류이므로 배척해야 한다.”(65항)고 지적한다.
공의회는 이어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과 이에 따르는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촉구하면서 농민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에 대해 언급한다. 공의회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회적 대우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에게 대해서 보수나 노동 조건의 여하한 차별도 두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66항)고 강조하고 “그들을 단순히 생산도구로 취급하지 말고 인격을 존중하여 가족들을 불러서 합당한 주택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며 현지 국가나 지방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어야 한다.”(66항)고 지적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예컨대 자동화와 같은 경제 및 산업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일자리와 교육을 마련해 주고, 특히 병자와 노인들의 생계와 인간의 품위를 보장해 주는 조치들을 요구한다.
제2절 경제-사회 생활 전체를 지배하는 몇 가지 원칙
제3장의 제2절은 사회·경제 생활 전체를 다스리는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이 문헌은 우선 노동과 노동자에 대해 언급한다. 이 대목은 요한 23세의 회칙 「어머니요 스승」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공의회의 노동에 대한 설명은 거의 육체노동에만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학적, 사회적, 신학적 기능 면에서 노동을 중시하는 자세는 다른 형태의 노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공의회는 모든 사람은 노동의 의무와 권리가 있다고 천명하고 “노동의 보수는 각자의 임무와 생산성, 기업의 상황과 공동선을 고려해서 본인과 그 가족들에게 물질적, 사회적, 문화적, 정신적 생활을 품위 있게 영위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정도의 것이라야 한다.”(67항)고 밝힌다. 공의회는 또한 경제 활동은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도록, 노동자들이 노예처럼 착취당하지 않도록 조직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생산 노동의 과정 전체가 인간의 필요와 생활의 요구 조건에 적응해야 한다. 먼저 가정생활, 특히 주부에 관하여 언제나 성별과 연령을 고려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하여 자기 능력과 인격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야 한다. ⋯ 가정, 문화, 사회, 종교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휴식과 여가가 모든 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또한 자기 직업적 노동을 통해서는 계발할 수 없는 능력과 기술을 달리 자유로이 연마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져야 한다.”(67항)
공의회는 이어 노동자들의 ‘기업 참여’ 문제를 다룬다. 공의회는 우선 “모든 이가 기업 경영에 적극 참여하도록 촉진해야 한다.”(68항)*고 촉구한다. 비록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의회가 여기서 의도하는 바가 기업의 ‘제도화된 공동 경영’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공의회는 또한 노동자들이 개별 기업보다 고차적인 상부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경제적, 사회적 결정에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참여는 노동자들이 자유로이 선출한 대표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공의회는 여기서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조직할 권리와 아무런 보복의 위험 없이 조합 활동에 참여할 권리는 기본 인권에 속하는 것으로 인정되어야 한다.”(68항)고 밝힌다. 공의회는 이어 노동 쟁의에 대해 공정하게 언급하면서, 필요하고 성실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날 경우, “파업은 최후의 필요하고 정당한 수단이 될 수 있다.”(68항)고 선언한다. 그러나 공의회는 사용자 측의 공장 폐쇄는 권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문헌은 이어 재산 문제를 다룬다. 이 문헌은 우선 69항에서 현세 재화는 모든 사람을 위해 창조되었으며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나누어져야 한다는 점을 밝힌다. 이 문헌은 우선 이러한 점을 밝힌 다음에 가서야 사유임과 동시에 공유이기도 한 재산의 이용에 대해 언급한다. 공의회는 재산권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옛날 교부들이 가르친 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할 의무를 상기시킨다. 교부들은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쓰고 남은 것만으로 해서는 안 되며 극단적인 빈곤을 겪고 있는 사람은 필요한 것을 타인의 재산에서 취득할 권리가 있다고 가르친 바 있다.
이 문헌은 여기서 세계의 기아 상황을 상기시키면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선진국에 강력히 호소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재화의 공동 목적’의 역동적 개념의 도입을 시도하면서 특히 선진국에서 이를 위한 사회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 “이런 제도 때문에 오히려 국민이 사회에 대한 소극적 태도에 빠진다든지 맡은 임무의 책임을 기피한다든지 봉사를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69항)고 경고한다.
이 문헌은 이어 투자와 통화 문제에 있어서의 윤리에 대해 언급한다. “투자는 오늘과 내일의 국민을 위한 충분한 노동의 기회와 수익을 보장하는 것이라야 한다. ⋯ 또한 저개발 국가와 지역의 긴급한 요청도 항상 고려해야 한다. 통화 행정에 있어서 ⋯ 경제적 약소국가들이 화폐의 가치변동으로 부당한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70항)
이어 이 문헌은 우선 사유재산의 긍정적 기능을 간추려 제시한다. “재산 소유와 외적 재화에 대한 사유권의 기타 형태들은 인격 표현에 이바지할 뿐 아니라 인간에게 사회와 경제 분야에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므로 개인이나 단체가 외적 재화에 대하여 일정한 지배권을 취득하도록 장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사유 재산이나 외적 재화에 대한 일정한 지배권은 개인과 가정의 자립을 위해 절대로 필요한 생활권을 제공하는 것이며 인간 자유의 연장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의무와 책임을 실천케 하는 자극제이므로 시민적 자유의 한 가지 조건도 된다.”(71항) 그러나 사유 재산권은 만일 공동선이 그것을 요청하고 그것에 대한 ‘공정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국가가 몇몇 재화를 공공 재화로 전환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공동선을 해치는 사유재산의 남용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 또한 국가의 책임이다. 공의회는 여기서 ‘현세 재화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여기서 사유재산의 본질적 기능인 사회적 기능이 나온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헌은 이어 토지 사유 문제를 다룬다. “많은 저개발 지역에 광대한 농토가 혹은 반쯤 경작되고 혹은 사리(私利)의 목적으로 전혀 경작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는가 하면 국민의 대부분은 땅을 전혀 가지지 못했거나 극히 좁은 땅 밖에 가지지 못했으며, 또 한편, 농산물의 증수가 긴급히 요청되는 것이 명백하다. 지주에게 고용된 사람이나 소작인으로 토지의 한 부분을 경작하는 사람들이 받는 급료나 보수는 흔히 인간 품위에 부당하게 적은 것이고 마땅한 주택도 없으며 중개인들에게 착취당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들은 아무런 보장도 없이 자발적으로 책임지고 행동할 능력이라곤 거의 박탈당하고, 개인적 종속 관계에 살고 있으므로 문화적 진보나 사회적 내지 정치적 생활에 참여하는 것도 전혀 금지당하고 있다.”(71항)
이 문헌은 이어 사회 경제 발전을 위해 협력하면서 정의와 사랑을 위해 노래하는 모든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제4장 정치 공동체의 생활(73-76항)
이 문헌은 제2부의 제4장에서 4개 항에 걸쳐 정치 공동체의 생활에 대해 언급한다. 이 문헌은 우선 정치 분야에서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인권을 보장하는 질서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증대되고 있고, 정치 생활 조직에 대해 공동 책임을 맡으려는 희망이 증대하고 있으며 소수 집단을 존중하고자 하는 의식이 높아지고 있고 관용과 모든 사람의 권리의 평등성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 문헌은 이어 “정치 공동체는 공동선을 위해서 존재하고, 공동선 안에서 정당화되고 그 의의를 발견하며, 공동선에서 비로소 고유의 권리를 얻게 된다.”(74항)고 천명하면서 다시금 공동선을 정의한다. 즉 “공동선은 개인과 가정과 단체가 보다 완전하게, 보다 쉽게 자기완성에 도달할 수 있는, 사회생활의 모든 조건들의 총체를 내포한다.”(74항)
이러한 정치 공동체와 공동선에 이바지하는 공권력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질서에 속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체제를 결정하고 집권자를 선택하는 일은 국민들의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다. 정치권력 행사는 윤리 질서의 한계 내에서 그리고 공동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삼아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통적인 법질서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때 “국민들은 복종해야 할 양심상의 의무를 진다.”(74항)
이 문헌은 여기서 “공권력의 월권행위로 국민이 억압을 당하는 경우에라도 국민은 객관적으로 공동선이 요구하는 것이라면 거절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그러나 국민은 “공권력 남용에 항거하여 자연법과 복음이 보여주는 한계 내에서 자신과 동포의 권익을 옹호할 수 있다.”(74항)고 강조한다.
공의회는 이어 민주주의에 최대의 찬사를 보내며 민주주의적 국가관을 제시한다. 공의회는 여기서「사회화」시대에 있어서 개인의 권리가 공동선 때문에 제한될 수 있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고려하면서, 그러한 경우 권리 제한의 조건들이 사라지면 곧 자유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공의회는 이어 “정치권력이 개인과 사회 집단의 권리를 침해하는 전제주의나 독재 형태를 취하는 것은 비인간적”(75항)이라고 천명한다. 공의회는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류 가족 전체의 복지”(75항)를 위하여 애국심을 초월할 것을 권고한다. 공의회는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정치 분야에서 훌륭한 모범을 보일 것을 권고한다.
공의회는 이어 그리스도인들은 현세 사물의 처리에 있어서 서로 다르지만 정당한 의견들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다른 의견들과 다른 정당들의 지지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것은 정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 신자들의 전원일치적 일원론을 명백히 부정하는 것이다. 공의회는 이어 정당들은 “당리를 공동선에 앞세워서는 절대로 안 된다.”(75항)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헌은 이어 시민 교육과 정치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자신의 편익과 물질적 이익을 포기하고 정치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이 문헌은 제4장을 마무리하면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다룬다. 우선 이 문헌은 특히 다원적 사회에서는 “신자들이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그리스도교적 양심을 따라, 시민으로서 자기 이름으로 행하는 일과 교회의 이름으로 사목자들과 함께 행하는 일을 명백히 구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76항)고 천명한다. “어느 단체도 ‘가톨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교회 관할권자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교회법 300조 참조)고 규정하고 있거니와, 이러한 천명은 다원적 사회로 하여금 그리스도교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명백히 구별하도록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공의회는 이어 “교회는 그 직무로 보나 그 권한으로 보나 절대로 정치 공동체와 혼동될 수 없으며 아무런 정치체제에도 얽매이지 않는다.”(76항)고 선언한다. 교회는 “인격 초월성의 표지요 수호자”(76항)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은 곧 인간은 국가에 전적으로 속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정치 공동체와 교회는 그 고유 분야에 있어서 서로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것”(76항)임을 밝히면서, 양자 다 같이 인간에게 봉사한다는 면에서 장소와 시간의 여건을 고려하여 서로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교회의 공헌은 국내와 국제 차원에서 정의와 사랑을 촉진하며 국민들의 정치적 자유를 촉진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공의회는 이어 하느님의 말씀의 신비에 헌신하는 사람들은 여러 면으로 보아 지상 국가의 수단과는 판이한, 복음의 고유한 방법과 수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 안에 존재하는 모습의 전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즉 교회는 국가가 제공하는 특권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정당한 기득권의 행사도 교회 증언의 성실성이 의심을 받게 한다든지 혹은 새로운 생활 조건이 다른 규범을 요청할 경우에는 포기할 것”(76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포기 선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빛나는 면모의 하나이다.
제5장 평화의 증진과 국제 공동체의 촉진(77-90항)
제5장은 2개 절, 14개 항으로 나뉘어 평화 증진과 민족들의 공동체 건설을 다룬다. 우선 이 문헌은 평화를 언제나 새롭게 이룩해야 할 과제로서 역동적으로 서술한다. “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만도 아니요, 적대 세력 간의 균형 유지만도 아니며, 전제적 지배의 결과도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평화는 정의의 실현인 것이다. 인간 사회의 창설자이신 하느님께서 인간 사회에 부여하신 질서, 또, 항상 보다 완전한 정의를 갈망하는 인간들이 실현해야 할 그 질서의 현실화가 바로 평화인 것이다. 인류의 공동선은 본질적으로 영원한 법칙에 지배되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내용은 시대의 흐름을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므로, 평화는 한 번 영구히 얻어진 것이 아니고 언제나 꾸준히 건설되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타인과 타국민, 그리고 그들의 품위를 존중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형제애의 성실한 실천이 평화 건설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 이렇게 평화는 정의의 내용을 초월하는 사랑의 결실이다.”(78항)
이 문헌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육신 안에서 증오를 죽이시고 사랑의 성령을 사람들 마음속에 부어 주셨음을 상기시킨 다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를 건설하는 일에 투신하도록 강력하게 호소한다. 동시에 이 문헌은 자신의 권리를 옹호함에 있어서 폭력을 쓰지 않고 약자도 쓸 수 있는 방위 수단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제1절 전쟁 회피
이 문헌은 제5장의 제1절에서 전쟁을 피해야 할 필요성을 다룬다. 이 문헌은 현대 세계 상황의 복잡성과 새로운 야만적 전쟁 수행의 가능성을 상기시킨다. 이와 관련하여 공의회는 우선 “국제 자연법과 그 보편적 원리가 지니고 있는 불변의 가치”(79항)를 상기시킨다. 공의회는 이어 ‘명령은 명령이다.’라는 비인간적인 군주주의적 표현을 용인할 수 없는 것으로 단죄한다. “고의로 이런 원리를 위반하는 행동과 그런 행동을 종용하는 명령은 범죄 행위가 아닐 수 없으며 맹목적 복종이 이런 명령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변명이 될 수 없다.”(79항) 공의회는 이어 계획적으로 국민 전체나 소수의 이민족을 전멸하는 행위를 극악의 비도덕적인 범죄로 단죄하고 이런 명령에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한편 공의회는 군사 행동과 그 결과의 비인도성을 감소시키려는 목적으로 체결된 여러 가지 국제 조약들을 존중할 것과 이런 조약들을 개선하여 더욱 효과적인 것이 되도록 할 것을 요청한다. 또한 공의회는 여기서 “양심상의 이유로 무기 사용을 거부하며 다른 방법으로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달리 인간다운 입법 조치를 취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79항)고 밝힌다. 공의회는 여기서 근본적으로 양심에 의한 불복종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공의회는 이어 “모든 평화적 타협 방법을 시도해 본 연후라면”(79항) 윤리의 한계 안에서 각 정부의 방위의 권리(의무가 아님)를 인정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또한 병역 의무는 평화 건설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문헌은 여기서 새로운 무기 개발에 의한 세계의 전면적인 파괴 가능성이라는 현실은 공의회 교부들로 하여금 “완전히 새로운 태도로 전쟁 문제를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한다.”(80항)고 밝힌다. 이 문헌은 이어 전면 전쟁을 “하느님과 인간 자신을 거역하는 범죄”로 단호히 단죄한다.
공의회는 이어 군비 경쟁에 대해 언급한다. 군비 경쟁은 직접 전쟁을 유발하지 않는 경우에도 중대한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이에 공의회는 군비 경쟁으로써 이루어지는 소위 힘의 균형은 결코 ‘평화’로 부를 수 없음을 천명한다. “그로써 전쟁 요인이 제기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차로 증대되고 있다.”(81항) 공의회는 이어 “신무기의 준비를 위하여 엄청난 재화를 소비하고 있는 반면에 전 세계의 현대의 숱한 비참에 대하여는 아무런 대책도 서 있지 않다.”(81항)고 개탄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참 평화를 회복하려면 정신의 개혁부터 시작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81항)고 선언하고 군비 경쟁은 “인류의 막심한 상처”라고 규정한다. 공의회는 이어 “위로부터 우리에게 허용된 현재의 유예기간을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책임을 자각하며 보다 인간다운 방법으로 우리의 분쟁들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할 것”을 권고한다.
공의회는 이어 전쟁 회피를 위해 모든 국가들이 인정하는 국제기구의 설립을 촉구한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군비 경쟁을 종식시키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군비 축소를 실제로 시작하려면, 일방적으로 할 것이 아니고, 협정으로 보조를 맞추어, 유효하고도 진실한 보장 밑에서 진행되어야 한다.”(82항)고 지적한다. 공의회는 전쟁의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든 사람들을 지원해 줄 것을 권고하면서 평화를 위해 기도할 것과 민족적 이기심을 포기할 것을 촉구한다. 공의회는 또한 평화 건설을 위한 모든 노력은 여론이 새로운 정신으로 적절하게 형성되지 않는 한 아무 소용도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기서 정신의 재교육과 새로운 여론 형성이 시급히 요청된다. 그러므로 교육자들, 특히 청소년 교육에 헌신하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평화 애호의 새로운 감정을 길러 주는 것이 자신들의 가장 중대한 의무라고 생각해야 하겠다.”(82항)
제2절 국제 공동체의 건설
제5장의 제2절은 국제 공동체의 건설을 다룬다. 이 절은 제1절과 긴밀히 연결된다. 왜냐하면 이 절은 전쟁의 원인이 되는 불의를 제거하는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이 문헌은 여기서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에 따라 국제기관들의 활동에 대해 언급하면서,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 문헌은 이어 86항에서 이러한 국제 협력의 네 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공의회는 이어 현대의 인구 증가 문제를 다루면서 이에 대한 장·단기 정책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출생한 자녀의 수를 결정하는 것은 부모의 바른 판단에 달린 것이므로 절대로 공권력의 판단에 맡길 수는 없다.”(87항)는 점을 다시금 강조한다. 공의회는 부모들이 그러한 판단을 책임성 있게 할 수 있도록 무엇보다 먼저 종교 교육이나 적어도 일반적인 도덕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리고 부모들은 “산아조절에 있어서 부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 연구의 진보에 관해서는, 그 확실성이 증명되고 윤리질서에 부합하는 방법”(87항)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이것은 또한 사목자들도 이 문제를 금기시해서는 안 되며 부모들을 낡은 사고방식에 빠져 있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것을 뜻하기도 한다.
공의회는 이어 그리스도인들에게 국제 질서 건설에 협력할 것을 권고한다.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국민의 대부분이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라들이 풍부한 재화를 누리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나라들은 생활필수품도 없이 기아와 질병과 온갖 불행에 시달리고 있는 스캔들은 제거되어야 하겠다.”(88항) 현대의 불행을 덜어주기 위해 하느님의 백성은 쓰고 남는 것만이 아니라 자기에게 필요한 몫에서 나누어 주어야 한다. 공의회는 또한 이 분야에 있어서 다른 그리스도교 형제들과 협력할 필요성과 교회의 원조를 조직화할 필요성 및 발전 촉진을 위해 헌신하려는 사람들의 교육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평화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간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교회와 이들의 단체들이 국제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공헌에 대해 언급한다.
공의회는 또한 빈곤한 지역의 발전과 민족들 간의 사회 정의를 지속적으로 촉진할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회의 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한다.
맺음말(91-93항)
공의회는 여기서 이 문헌을 통해 교회가 의도하는 바는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세계의 건설에 이바지하려는 것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공의회는 이어 세계의 환경과 문화 형태가 서로 크게 다르므로 이 문헌이 여러 부분에서 일반적인 것만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음을 밝히고 “그것이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과제를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경우가 흔하므로, 그것을 앞으로 계속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91항)이라고 지적한다. 공의회는 여기서 대화와 교회 안에서의 관용을 권고하면서 “필요한 일에 있어서 일치하고 불확실한 일에 있어서 자유를 존중하며 모든 일에 있어서 사랑을 보존해야 한다.”는 유명한 슬로건을 강조한다.
공의회는 특히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서 비그리스도교 신자들, 무신론자들, 교회를 반대하고 박해하는 사람들과도 대화하고자 하는 소망을 피력한다. 공의회는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같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폭력도, 기만도 없이 참된 평화 속에 세계를 건설하기 위하여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해야 하겠다.”(92항)고 다짐한다.
공의회는 끝으로 복음이 원하는 형제들을 위한 사랑에 대해 언급한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모든 사람 안에서 형님이신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말과 실천으로써 실제로 사랑하며, 이로써 진리를 증명하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의 신비를 다른 사람들과 서로 나누는 그것이다.”(93항) 이 문헌은 “이러한 방법으로써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가슴 속에 생생한 희망을 일으켜 줄 수 있다.”(93항)는 확신을 피력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의 종말론적 희망과 하느님께 대한 찬미로 끝맺는다.
Ⅲ. 토의 주제
1. 현대 세계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번뇌”는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당신의 교회 공동체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칩니까?
2. 당신이 속한 사회(나라, 지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3. 교회가 할 일을 세상에서 택해야 합니까? 실제로 그것은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뜻합니까?
4. 사람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네 가지만 들어 보시오. 당신의 사회(나라, 지역 사회)에서 이 존엄성을 실현하는 데 이바지하거나 장애가 되는 것들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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