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6]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세월호 1주기 추모미사 강론

2015년 4월 16일 14:30

진도 팽목항 현장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세월호 1주기 추모미사 강론

+ 평화를 빕니다!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대참사가 이곳 팽목항 인근 바다에서 발생한지도 벌써 1년의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그 날 고귀한 304명의 생명이 여객선 세월호와 함께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해 가는 세월호를 바라보면서 국민 모두가 가슴 아프게 울었던 대참사의 날, 우리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세월호와 함께 바닷속 깊은 곳에서 생을 마감한 희생자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들을 기억하며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슬픔과 절망에 아파하는 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구조과정에서 생명을 잃어버린 고귀한 죽음들을 기억하며 삼가 고인들의 영원한 안식을 빌며 기도합니다. 유가족과 실종자가족들의 아픈 상처의 고통을 함께 하며, 부활하신 주님께서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그리고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우리들은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구조대를 기다린 아이들의 영혼 앞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고 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우리사회의 무기력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더불어 부끄러움만 더해가는 날입니다. 그동안 경제성장 제일주의에만 국가적 온 힘을 기울였던 구호아래 감춰져 있던 한국 사회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이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난제를 해결하기에 과연 우리 국가 기관의 역부족인 관리체계와 윤리의식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이 세월호 참사와 비슷한 난제가 발생한다면 과연 해결할 수 없을 것인가 하는 강한 의구심만 들 뿐입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에는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농부인 카인이 아우 아벨을 들로 불러내어 죽인 다음, 아벨의 피가 땅바닥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주님께서 카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지금 주님께서는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을 통해서 세월호에 있었던 너의 형제자매들은 어디 있느냐? 라고 되묻고 계십니다. 국내․외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준 세월호 침몰 대참사, 그 놀라운 사건 앞에서 국민들은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삶의 근원적이고도 전반적인 사회의 위기를 재조명하는 기회로, 물질주의의 극대화가 불러온 사회적 병폐의 현실을 인정하고 우리 모두가 새롭게 변화되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이 교훈을 절대 잊지 않기를 이구동성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 그때의 가슴 아픈 기억들이 우리네 삶 밖으로 밀려나 잊혀져가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지난 3월에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의 로마사도좌 정기 방문 때,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 주교님들과의 대화에서 제일 먼저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고 있는지 물으시며 큰 관심을 표명하셨습니다. 지난 해 8월 한국을 방문하신 교종께서는 세월호 가족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마음과 눈빛으로 위로하시며 아픈 상처를 어루만져주셨습니다. 교종께서는 ‘고통 앞에는 중립이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며 고통 때문에 힘들어하는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을 마음에 기억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습니까?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교통사고쯤으로 치부하며 이제 그만 이야기하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억울한 희생과 아픔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세월호 이야기는 그만 이야기하자고 하는 사람들에게 창세기는 되묻고 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화를 내고, 어찌하여 얼굴을 떨어뜨리느냐? 7,네가 옳게 행동하면 얼굴을 들 수 있지 않느냐? 그러나 네가 옳게 행동하지 않으면, 죄악이 문 앞에 도사리고 앉아 너를 노리게 될 터인데, 너는 그 죄악을 잘 다스려야 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월호 대참사는 어느 누구의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기억의 지킴이’를 상기시키셨습니다. 세월호의 원인규명 과정과 그 결과를 은폐하지 말고 사실을 밝혀 대참사가 가져다준 시대의 징표를 깨닫고 이러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제 우리들 자신이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세월호 선체를 인양하도록 정부 관계 기관은 최선을 다 해주기를 촉구합니다. 4월 13일 열린 천주교 연석회의는 "정부가 입법 예고한 시행령은 객관적인 조사를 할 수 있는 민간 조사 위원을 축소하고 조사 범위를 축소하는 등 특별법을 무력화하는 독소 조항으로 가득 차 있기에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또 "정부는 선체 인양을 회피하기 위해 인양 비용을 들먹거리는 간악한 술수를 중단하고, 실종자 9명이 가족 품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에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민심은 천심이라고 이러한 하늘의 뜻인 민심이 무시되지 않고 고스란히 수용되어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순간까지 아직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정작 책임을 져야할 사람들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익명성의 책임전가로 숨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참담한 고통과 슬픔으로 계절의 봄은 왔건만 아직도 엄동설한의 삭풍으로 떨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이 고통 중에 있는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마음을 느낄 때 비로소 아픈 상처의 치유를 받을 것입니다.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세월호를 책임 있는 어른들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도 선생님들과 학생들, 일부 승무원들은 서로를 먼저 챙겨주었으며 끝내는 생을 마감하신 선생님들도 계셔 그나마 우리 사회의 빛과 희망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남윤철 선생님은 난간에 매달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던져 주었고 학생들을 비상구로 대피 시키시다가 돌아가셨고, 박육근 선생님은 학생들 갑판에 대려다 놓고 다시 내려가며 “죽어도 학생들과 죽겠다.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최혜정 선생님은 “걱정하지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라고 말하며 학생들을 탈출시키다가 끝내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여타 승무원들과 달리 22살의 승무원 박지영양과 양대홍 사무장은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다 자신은 끝내 탈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단원고 2학년 정차웅군도 역시 자기 친구들을 탈출시키다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올바른 진실 규명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진실 규명을 통해 우리나라가 이런 아름다운 사람들의 세상이 될 수 있길 기원합니다.

 

지금 우리는 교회 전례력으로 부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 유가족들, 실종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아직도 부활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실체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선체가 인양될 때 우리는 드디어 그분들과 함께 부활의 참된 의미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정부는 세월호 때 선장과 승무원이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이야기한 그 형식대로 돈으로 가족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합니다. 가만히 있었던 아이들은 우리를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 돈으로 가만히 있으라고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에 있느냐? 바닷속에 가라앉은 네 형제 자매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