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0일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 강론
(연중 제28주간 월요일 루카 11,29-32)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김용태 마태오 신부(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찬미 예수님!
강론을 하는 저는 천주교 대전교구 정의평화 위원회 위원장 김용태 마태오 신부입니다.
우선 먼저, 작년 11월 14일 경찰의 잔악한 살인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신지 317일 만인 지난 9월 25일 끝내 우리 곁을 떠나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께서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평화의 안식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울러 세월호 희생자들과 무고하게 죽어간 이 땅의 수많은 생명들을 모두 하느님의 손에 맡겨드립니다.
그리고 이 모든 희생자들의 유가족 여러분께 주님의 크신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또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모든 분들께도 주님의 크신 격려와 위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렇게 명복과 위로와 격려만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무고한 이들의 죽음과 희생, 무도한 자들의 불의와 부정, 도대체가 한 두 번이고 한 두 가지여야지 이제는 하나하나 손꼽기도 어려울 정도입니다.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 피살, 세월호 참살, 벼랑 끝에 선 노동자와 농민들, 여전히 능욕 당하시는 위안부 할머니들, 미국의 대리전쟁기지로 내몰리는 성주와 한반도, 그리고 밀양과 강정과 썩어 문드러진 4대강, 대책 없는 핵 발전으로 방사능 지뢰밭이 되어버린 이 땅, 그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수많은 비리들, 4대강 비리, 자원외교비리, 방산비리, 부정선거, 국정원과 검찰과 경찰과 재벌과 언론의 악마적 연대와 폭력 그리고 그들이 저지르는 수많은 비리, 부정하게 대통령 자리에 앉아 있는 자와 그 측근들과 추종자들이 저지르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비리들, 그리고 최근에는 미르와 K스포츠로 드러나는 최순실 게이트 등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 가쁠 정도입니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나라꼴은 엉망진창이 되고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이젠 못 참겠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당해야 합니까?
“주님, 표징을 보여주십시오. 당신의 권능을 보여주십시오. 당신 팔의 큰 힘을 떨쳐 보이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쳐주시고 부요한 자들을 빈털터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미천한 이를 끌어올리시고 주리는 이를 은혜로 채워 주십시오.”
헬조선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성모님의 노래에 나오는 이 구절을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습니다.
그러나 … 이러한 우리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불의를 휩쓸어버리는 주님의 권능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오늘 복음에서처럼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얘들아, 미안하지만 … 나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는 외침 속에서도 묵묵히 십자가에 달려 죽어 가신 주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주님, 어찌 이리 약하십니까? 저들의 무례함에 분통이 터지지 않으십니까? 저들의 무도함에 치가 떨리지 않으십니까? 그런데 당신은 어찌 그렇게 무기력하게 계속 당하고만 계십니까?
표징을 보여주십시오. 하릴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어버리는 그런 표징 말고 파라오의 병거를 치셨던 그런 강력한 표징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나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주님은 그저 아무 말 없이 앞장서서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그러면서 가끔 애처로운 눈으로 뒤돌아봐주실 뿐입니다. 그저 우리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시려는 듯이 …
약해빠진 하느님! 병신 같은 하느님,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가진 거 다 내어주고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뿐인 하느님, 그런 걸 표징이라고 보여주는 하느님! 이게, 살려달라고 매달리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표징을 보여 달라며 비아냥거리는 자들에게나 울부짖으며 구원의 표징을 갈구하는 이들에게나 똑같이 그 약해빠진 표징 바로 요나 예언자의 표징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러고는 참으로 황당하게도 우리들도 그 표징에 동참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보고 더 약해지라는 겁니다. 저 나쁜 놈들을 쓸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청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약해지라 말하시는 겁니다.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합니다.
“그런데 왜요? 왜 그래야만 합니까? 저 나쁜 놈들, 저 힘센 놈들과 싸워 이기려면 우리도 강해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약해져야 합니까?”
그러나 아무 말 없으신 주님 앞에서 우리도 침묵 중에 곰곰이 그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아 … 저 불의한 자들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더 우선되어야 할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과 맞서 싸워야 하는 그 이유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까 그 이유라는 거 아주 분명합니다. 우리가 저들과 맞서 싸우는 이유, 그것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들 때문입니다. 정의, 평화, 생명, 공공선, 우리 주위의 가장 작은이들도 존중받는 세상, 단 한 사람도 버림받지 않는 그런 세상, 모두가 주인이 되는 그런 세상, 모두가 한 형제자매가 되는 그런 세상, 우리는 그런 것들을 원합니다. 그게 우리가 저 불의한 자들과 싸우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약해진다는 것은 이 이유에 충실하기 위함이 아닐까요? 싸우는 대상에 충실하기 위해 강해지기보다 싸우는 이유에 충실하기 위해 약해지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약해져야만 약한 이들을 끌어안을 수 있고, 작아져야만 작은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으며, 비워야만 가난한 이들을 채워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해질수록 약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 강해지고, 우리가 작아질수록 작은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 커지며 우리가 비울수록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약한 것들, 작은 것들, 가난한 것들에 대한 사랑의 충실성이야 말로 불의에 저항하고 더 나아가 그 불의한 세력을 물리치는 우리의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상의 불의한 폭력과 십자가의 약함 앞에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징, 그리스도의 그 약함이 세상을 이깁니다. 보잘 것 없는 이들에 대한 그 선명한 사랑,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 한없는 연민,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며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성실과 공정이 세상을 이길 것입니다.
어둠과 싸우기 위해서 어둠보다 더 강해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자칫 그러다 어둠을 닮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어둠과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욱 더 선명하게 밝아지는 것입니다. 빛은 그저 빛이면 됩니다. 어두울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그런 빛이면 됩니다. 그리고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빛이 어둠을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빛으로 타올라야 합니다.
살맛 안 나는 세상 속에서도 소금은 그저 더욱 선명하게 짠맛을 내야 하는 거고, 불의가 판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외치는 정의는 끝까지 정의다워야 하는 거고, 불목과 다툼이 만연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끝까지 평화다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더욱 더 선명해지는 것이 우리가 이 불의한 세상을 이기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권력다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당이 되고자 하는 야당이 아닙니다. 인생역전을 꾀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는 끝까지 바르고 착하게 살고 싶습니다. 의롭게, 평화롭게, 선하게, 단 하나의 생명도 죽임 없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행복을 그리면서 그렇게 오손도손 살아가고 싶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링 위에서 그 자들이 만들어 놓은 싸움의 방식으로 그 자들이 웃으며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끼리 서로 치고 박고 피터지게 싸우는 그딴 짓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 자들을 링 위에 세우고 우리가 그 자들의 자리에서 웃으며 낄낄대는 그런 식의 설욕을 원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바르게 인간답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우리 손에 끼고 있는 피 묻은 글러브를 벗어 던질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만들어 놓은 링 위에서 내려올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불의한 자들이 만들어 놓은 저 더러운 싸움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돈과 권력이 표징이 되는 이 시대 헬조선의 게임의 법칙을 단호히 거부하고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바로 주님께서 지고가신 저 십자가의 약함을 우리 삶의 법칙으로 삼아 기꺼이 지고 따를 것입니다. 저들이 옳지 못할수록 우리는 더욱더 바르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미 우리보다 앞서서 그 길을 걸어가신 우리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처럼 그리고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와 의사와 열사와 지사들처럼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땅 위에서 썩어지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물론 그 삶, 쉽지 않을 것입니다. 작아지고 약해지고 썩어지고 죽어주는 그 삶이란 것이 쉬울 리 없습니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것입니다. 서로 명복도 빌어주고 위로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면서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그 길 험난해도 지겨워도 우리는 조급해 하지도 않고 나태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적극적이되 조급해 하지 않으며 기다리되 나태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해방 세상의 그 날이 언제쯤 올까 조급해 하지 않을 것이며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마치 내일 당장 해방의 그 날이 올 것처럼 최선을 다해 행동하되 당장 내일 그날이 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 어두울수록 더욱 선명하게 타오르는 빛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죽었지만 평생 최선을 다해서 걸어갔고, 이 땅의 수많은 독립지사들도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마치 당장 내일 해방이 올 것처럼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았듯이, 우리도 그 날이 당장 내일이 될지 내년이 될지 혹은 내가 죽은 다음이 될지 모르지만 마치 당장 내일 그날이 올 것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다 보면…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계속 돌고 돌다보면 언젠가는 저 견고한 불의의 장벽들도 예리코의 성벽처럼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차벽을 세우고 물대포를 쏴대도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있습니다. 하지만 도끼로 찍어내기도 전에 저들은 이미 자신의 부정과 부패로 썩어문드러져 스스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들 스스로의 악행이 그들 스스로를 심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거부한 자의 말로가 어떨 지는 불 보듯 뻔합니다.
지금 우리가 봉헌하는 이 거룩한 미사는 불의한 정권의 회개를 위한 미사이기도 합니다. 이 땅의 불의한 권력자들이 이 미사의 지향대로 지금이라도 파멸의 길에서 벗어나서 참 생명의 길을 선택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저들의 눈에는 우리가 종북세력으로만 보이고 우리의 이 간절한 기도와 호소가 불법시위와 선전선동으로만 보이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됩니다. 예수님을 가리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주장했던 어리석은 자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어리석은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저들이 이 용서받지 못할 파멸의 길을 끝끝내 걸어가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울 뿐입니다.
참된 길을 걷는 이와 그 길을 걷지 않는 자의 모습은 그 끝이 어떠할지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참된 길을 걸어갈 따름입니다.
임께서 앞장서 가시니 숨이 붙어있는 한 끝까지 따라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PHOTO Link [20161010 사진] 광화문 광장. 불의한 정권의 회개와 민중을 위로하는 시국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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